[에세이] 손편지의 자국들

in #essay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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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의 모양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거나 근황을 전하는 의미 외에도 다분한 사랑을 바탕으로 함을 유사점으로 갖는다. 먼 곳에서, 근처에서 또는 같이 사는 이에게도 편지를 전해줄 수 있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 매일 카톡, 문자, SNS 등 일상의 다양한 면을 반영해 글을 쓰지만, 손 편지 만큼은 다른 차원의 매개체이다. 그렇기에 최근에 받은 정성 가득한 손편지가 더욱 각별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보통 편지지 오른쪽 위엔 우표가 붙어있고 왼쪽 위엔 보내는 이의 주소, 오른쪽 밑엔 받는 이의 주소가 적힌다. 프랑스 우체국에선 흰색 봉투를 사용하고 lettre verte, suivie, recommande 세 종류로 나뉘어 진다. 순서대로 보내기만 하는 기본 verte 형-녹색우편으로 불리우며 우선 순위 편지보다 CO2가 30% 적다 (녹색 도장이 찍힌 봉투는 항공으로 발송되지 않는다)- 보낸 이에게 언제 편지가 도착했는지 알 수 있는 우선 순위 편지 suivie 형, 마지막으로 수령인의 사인을 받아 알려주는 recommande 형. 프랑스로 보내는 편지라면 1일 만에 배달되고, 국제 배송도 가능한 lettre prioritaire 도 있다.


 느림의 미학따위!를 외치는 지긋지긋한 프랑스 행정이지만, 우체국에서 만큼은 붙일 편지와 우표를 들고 어떠한 시간이라도 감행하며 고분고분 줄을 서 기다린다. 내 마음을 담은 이 편지가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그 길을 부디 잘 열어주기를 바라며, 직원들의 작은 실수에도 기꺼이 웃어주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다. 물론 이빨을 앙 물며(즈에발 일즘 자알 즘 하르그).


 어떤 형식으로 오든, 편지를 기다리는 몇주간 내 마음은 한결같다. 자주 우체통을 열어보고 (매일 우편물을 확인하긴 하지만) 다른 일들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한 편으론 늘 우체부의 방문을 기다린다. 그 흔한 전화 한 통도, 문자 한 줄도 이토록 애타는 기다림을 요구하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기다림엔 늘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는 편이니까.


 마음이 통하는 친구의 손편지는 보약이라 했다. 보장되지 않은 앞날에 떨던 우리는 매일 불안감을 나누었다. 보약으로, 때론 자정을 넘긴 시간의 반가운 전화도, 퇴근을 기다리는 문자로 서로를 기다림을 멈추지 않는다. 친구는 편지 끝에 우리 올해는 넘기지 말고 꼭 만나자고 적었다. 실제로 오랫동안 볼 수 없이 서로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만큼 열심히 살았으니까, 이 친구를 만나면 더욱 반가울거란 생각이 든다. 우연히 길거리를 지나가다 반갑게 만나는 상상도 수도 없이 했을 정도다.


 서로 한국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두고 떠나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느라, 돌아가면 한 사람에게 긴 시간을 내어주기 어렵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 스케줄을 맞춰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보면 다행이다. 한 두 해가 지나갈수록 만날 사람들은 쌓여가거나 사라진다. 그 속에서 잃지않은 인연으로 남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 된다. 파티를 열어 보고싶었던 사람들을 한데 모두 모아 만나는 방법도 있다.


 비교적 한국에 자주 들어가는 편이라 그리움을 간간히 해소하는 나와는 달리, 오랫동안 한국에 가지 못한 이 친구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만날 사람은 줄을 서있지만 시간은 정해져있는, 번거롭고 피곤한 일을 나 또한 여러번 겪어봤기에 그 심정 잘 안다. 늘 연이은 약속에 종종걸음으로 바삐 돌아다니느라 한국행에서 여유를 느낄 틈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그 시간은 아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행복한 일일거야.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반겨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니까. 같은 시간이라도 주어지는 모두에게는 각기 다르게 느껴지는 법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버겁지만 돌아와 생각해보면 더욱 힘을 내서 모두를 느끼고 올 걸, 후회를 하곤 한다. 비록 몸은 피곤할지라도 내가 자주 들어가려 노력하는 이유다.


 가디언 아주머니께서 나를 위한 편지가 도착했다고 알려주기 전까지 방에서 홀로 글을 쓰고 있었다. 고맙다고 전하고 옷을 주섬주섬 걸치고 밑으로 내려가 우체통을 열었다. 겉을 뜯어 안에 두번 많게는 네번까지 접힌 편지지를 꺼내 읽기까지 도달하는 그 과정엔 발신인을 떠올리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의 그리운 모습도,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말들도 모두 편지 한통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이러한 감정은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 되고, 최소 며칠은 기운을 충전해주는 에너지로 쓰인다.


 매번 나눴을 포옹과 키스가 만나지 못한 지난 몇 년간 셀 수도 없이 쌓였을테니, 이 친구를 만나면 찬찬히 풀어가야 하겠다. 서로를 향한 속도를 내어 만날 그 순간까지 열심히 달려가다보면 언젠간 그리움의 회포를 풀 날이 오지 않을까. 지구 반대편에서 나를 응원하는 든든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다가올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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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일 좀 잘 좀 하라구..... ㅎㅎㅎㅎ
불어인 줄 알았네요.
편지 참 드물어진 시대네요. 아쉬움....

저 말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입니다. 이젠 어느정도 포기하고 그러려니 하지만요. ㅎㅎ 편지의 시대가 다시 돌아오면 좋겠어요.

예전에는 편지 참 많이 썼는데 손으로 직접 쓰는 맛은 따라갈 수가 없는 것 같아요.
특히 편지지의 슥삭임이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쓰는 맛도 받는 맛도 참 유일하지요. 편지지에 쓰일 hodolbak 님의 글씨체가 궁금한데요?

손편지가 주는 정감이 있죠~ 역시 글쓰시는 분은 다르시네요~
전.. 손편지 받아본게.. 군인이었을 때 받아본 위문편지였던 것 같습니다. ㅋ

저는 주로 받는 쪽이긴 하지만, 쓰는 것도 좋지요. ^^ 다를건 없는듯 합니다. 군인 시절이였다면.. 엄청.. 오래됐나요?! ㅎㅎ

 4 years ago  Reveal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