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by 빌 브라이슨

in #kr-book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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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수필, 여행기, 교양서적 등 다방면에 걸쳐 재미있게 글 쓰기로 정평이 나있는 빌 브라이슨. 그가 야심차게 써낸 걸작,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었다. 이 책은 태양계, 천체, 우주, 지리학, 고고학, 화석, 고생물학, 원자, 생물학, 물리학, 지진, 진화론, 빙하시대, 인류학, 인류의 기원, 멸종된 생물 등등 그야말로 '거의 모든' 분야를 총망라하는 교양서다.

여기에 나열된 분야를 보기만 해도 머리가 빙빙 돌고 속이 체할 것 같겠지만, 빌 브라이슨의 재치 넘치는 글솜씨는 책을 끝까지 붙잡고 읽게 만든다. 물론 읽다보면 내 머리의 한계치를 넘어서는 부분도 있고, 어려워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가볍게 넘어가도 책 전체적으로 보면 큰 무리가 없고,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만 골라서 읽어도 상관없을 듯하다.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다방면에 걸쳐 지식과 상식이 상승하는 건 덤이다. 깊이 있는 지식까지는 어려울지 몰라도,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아, 그거."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칠 수 있는 정도는 될 수 있다.

내용도 알차고, 글도 술술 읽히는 책. 낯선 분야에 대해 얕게라도 지식을 쌓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출처: Goodreads
영어판 표지. 깔끔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1


이 책의 지질학/지진에 관련된 부분을 읽다보면 일본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된다. 일본이 얼마나 불안정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지 알게 되니까. 런던 대학의 위험 전문가(우리말로 정확히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인 빌 맥과이어(Bill McGuire, a hazards specialist at University College London)의 말에 의하면 도쿄는 "죽기를 기다리는 도시(the city waiting to die)"다. 지반이 약하고 3개의 지각판이 부딪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관동대지진이 일어난지 97년이 지났다. 그동안 조용했던 이곳의 지각판에는 계속 가해지는 힘이 쌓여있을 테고, 언젠가는 결국 지각판에 충격을 줄 테니까.

지진의 공포, 방사능의 공포,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 3공포가 맞물린 일본. 세 개 모두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이 때에 그저 눈 가리고 아웅하기에 급급한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바로 옆 나라인 우리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될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2


DNA 구조를 밝힌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까지 받은 크릭(Crick)과 왓슨(Watson).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알게 된 이후로 생물학과 분자생물학 등이 크게 발전했으니, 이들의 공로가 참으로 크다 하겠다. 그런데, 이들의 눈부신 성과 뒤에 묻힌 여성이 있다. 바로 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이다.

크릭과 왓슨이 DNA의 구조를 밝힌 데에는 프랭클린이 가지고 있었던 X-ray 사진이 결정적이었다. 그녀가 찍은 X-ray 사진은 다른 것들보다 훨씬 선명해서 DNA가 이중 나선 구조를 가졌다는 걸 추론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랭클린은 여러 차례의 요구와 회유에도 불구하고 크릭과 왓슨에게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고, 자료를 꼭 잠그고 다니는 등 굉장히 비협조적이었다.

어쨌든 크릭과 왓슨은 우여곡절 끝에 프랭클린의 X-ray 사진을 얻게 되고, 이들은 그 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해서 사진을 얻게 됐는지는 미스테리다. 그동안 계속 보여주기를 거절했던 프랭클린이 "옛다"하고 건네진 않았을 테니까. (누군가 다른 이가 보여줬다거나, 이들이 사진을 훔쳤다는 말도 있다. 모두 확증은 없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이런 이유 때문인지 크릭과 왓슨은 프랭클린에 대해 안 좋은 말들을 하고 다녔다. 왓슨은 프랭클린에 대해 "비이성적이고, 비밀이 많고, 고질적으로 비협조적이며, 일부러 섹시하지 않게 꾸미고 다니는(almost willfully unsexy) 듯하다"고 했다. 또한 그녀에 대해 "매력이 없는 건 아니다. 사실 옷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인다면 굉장히 멋질 텐데. (was not unattractive and might have been quite stunning had she taken even a mild interest in clothes)"라고 하기도 했다.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았다지만, 동료 과학자에 대한 평가에 '외모'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건 정말이지 프로답지 못해 보인다. 나라도 짜증이 나서 같이 연구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1950년대 과학계에서 여성 과학자에 대한 처우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일례로 여성 과학자들은 아무리 업적이 훌륭해도 남자 과학자들만 모이는 College's senior common room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도대체 왜 그녀가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협업하지 않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뒤에서 끊임없이 그녀를 욕하고, 외모 평가를 하고, 회유하고, 그러면서도 동등한 동료 과학자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그녀가 자신의 연구결과를 지키려고 했던 건 어쩌면 이해가 간다.

어쨌건, DNA 구조에 관한 연구를 했던 사람들은 모두 196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1958년에 이미 사망한 프랭클린만 빼고. 수많은 X-ray를 찍으며 연구했던 그녀는 방사선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난소암에 걸렸던 것이다.

만일 그녀가 건강히 살아있었더라면 함께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DNA 구조 연구에 관한 그녀의 공헌을 인정받았을까? 반세기가 넘게 흐른 지금의 과학계는 좀 많이 나아졌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로잘린드 프랭클린.
출처: 인터넷


안타까운 일이다 -3


지구상에는 멸종된 동식물이 많이 있다. 자연 재해 등의 이유로 자연스레 멸종되는 동식물은 4년에 1종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인간이 개입하게 되면? 인간에 의해 멸종되는 동식물의 수는 이것보다 12만배나 더 많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사람들이 무지해서, 너무나 무지해서, 수많은 동식물을 죽이고 멸종시키는 사례가 나온다. 읽으면서 수십번은 "말도 안돼!"라고 외친 것 같다. 자신이 총으로 쏘아죽인 새가 멸종 위기에 있던 마지막 세 마리 새였다는 걸 알고는 기뻐하기도 하고("the news filled him with 'joy'"), 역시 멸종 위기에 있던 또다른 새가 이틀 간격으로 서로 다른 두 군데에서 발견됐는데, 발견한 두 사람 모두 총으로 쏴버리는 일도 있었다. 사냥에 미친 사람들도 아니고!! 어느 섬에서는 등대지기가 키우던 고양이가 자꾸 새를 죽여서 잡아왔다고 한다. 이상하게 생긴 새가 궁금해서 등대지기는 그 새에 대해 묻는 편지를 박물관에 보냈다. 그 새가 그 섬에만 살고 있으며 멸종위기에 있던 새였다는 답장을 받았을 때는 이미 고양이가 섬에 남은 마지막 새를 죽인 후였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자기 개인 박물관에 박제를 시키기 위해 다른 새들을 다 죽인 후 마지막 한 마리를 죽여서 박제시켜 데리고 오기도 하고, 맛이 없어서 먹지도 못한다면서 그냥 총으로 쏘아죽여 멸종시키기도 한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동식물이 사라져갔을까? 지금 우리가 하는 행동들은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사라지게 만들까? 안타까우면서도 무서운 일이다.



출처: 교보문고
한국어 번역판 표지. '거의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표지. 약간 백과사전 느낌이다.


제목: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원서 제목: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저자: 빌 브라이슨 (Bill Bry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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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까알같이 볼게 많은 책이죠....^^
일본- 사라질 나라죠 ㅎㅎ

한번 읽고 반납하기엔 아깝더라고요. 집에 놔두고 봐야할 책 .
일본은.. 할많하안..

이 책 읽으면 박학다식해질 것 같아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