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즐거운 일은 없다지만 .

in #kr-philosophy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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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진정 즐기는 것도 일이 되는 순간 즐겁지 않다고 한다. 이를 고상하게 설명하면 외재적동기는 내재적동기를 해치기 때문이다. 내재적동기를 통해 행할 때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 목적을 달성했을 때의 즐거움이 행위를 이어가고 능력을 발전시킬 원동력이 되지만 외재적동기를 통해 행할 때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행위에 따르는 보상, 혹은 처벌의 회피가 원동력이 된다. 나약한 인간의 정신은 한번 외적 보상이 주어진 순간 내재적 동기를 잃어버리곤 한다. 그래서 즐기는 것도 일이 되는 순간 즐겁지 않은 것이다. 즐겁기 위해 시작한 비디오 게임을 더 이상 즐기지 못 하는 프로게이머들이 얼마나 많은가.

논어의 유명한 구절 중 하나가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낙지자)."이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구절인데, 이 또한 연구결과와 부합한다. 아무리 높은 수준의 외재적동기를 갖추었다고 해도, 내재적동기를 갖춘 사람에 비해 수행능력이 크게 뒤쳐진다. 그리고 내재적동기로 움직이는 사람이란 행위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니 공자가 제대로 관찰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내재적동기가 전혀 형성되지 않은 일을, 외재적동기에 의해 시작하게 되는 경우는 어떨까? 충분한 내재적동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외적보상이 주어지면 내재적동기가 무너지곤 하는데 내재적동기가 애초에 없는 경우에는 어떨까? 내재적동기가 없으면 수행능력이 떨어지고, 수행능력이 떨어지면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다. 비록 현대사회에서 수행능력과 생존율이 완전히 정비례하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비례하는건 아니다. 그러므로 살아남은 사람들 중 일부는 외재적동기만 가지고 시작한 일에서 내재적동기를 끌어냈다는 의미다.


사실은 다른 내용을 다루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은 흘러가게 두고, 손가락은 움직이게 두었더니 전혀 의도하지 않은 글이 나왔다. 자각한 순간 생각이 멎었다. 원래 쓰려던 내용과 전혀 관계가 없는건 아니지만, 연결고리를 찾을 체력이 없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서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며 변명을 남겨 놓고 원래 쓰려던 이야기를 해본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 청소를 굉장히 집중해서 했다. 꼼꼼하게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내가 특별히 청결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고, 청소를 꼼꼼하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 받은 일도 없는데 말이다. 그냥 그렇게 청소를 했다. 그리고나만 그렇지는 않았다. 내 친구들도 그랬고, 여기저기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들도 비슷하다.

나는, 우리는, 그들은 왜 그렇게 청소를 열심히 했고, 하고 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 무료하게 서있느니 무엇에라도 집중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표정을 잘 숨기지 못 하는 나는, 사색을 하면 표정에서 드러나는데 사장들은 내가 사색하는 모습을 싫어했다. 항상 웃고 있으라고 했다. 그래서 청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마네킹처럼 서있어야 한다. 청소를 했던건 바로 이 이유였던 것 같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료한 시간을 견디기 어려워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청소를 했을까. 그들도 그랬을까?


쓰다보니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구구절절 풀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냥 단절된 상태로 두고 싶다. 그래서 그냥 이대로 맺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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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청소를 하면 기분이 좋더라구요. 그렇지만 한 번 움직이기가... ㅋ 가즈앗!!!

이번 글은 차분히 세 번 읽었습니다. 전문 캡쳐해서 핸드폰에 넣고 읽고 싶네요 :D 감사합니다.

여백의 미, 생각할 여지가 있어서 좋아요.
공부하려 했는데, 공부하라 글러면 하기 싫어져요.

김선생님 좀전에 율님포스팅에서 멋진 샘을 보고 왔답니다
얼마나 멋지게 그려주셨던지 좋으시겠어요^^
자주 못뵙네요 ㅎㅎㅎ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그랬나요. 요즘 정신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기왕 할 거 대충하는 것보단 최선을 다하는 게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이죠..
전 그래서 얼마 전에 알바 그만뒀습니다. 그냥 서 있는 점장이 싫어서요.
제가 웃지 않아도 뭐라고 하고..

최근들어 저에게 가장 도움이 된 글인것 같습니다...
제가 하고있는 일을 할때 무의식적으로 '내재적 동기'로 인해 시작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외재적 동기'에 의해 시작한것 같기도 하더라구요....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서 마음을 정리해야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kmlee님 :D

내재적동기와 외재적동기의 가운데에 몸댕이를 두른 나가 있기에 둘다 무시할수 없겠죠. 분리되어서 생각할수없으니 차라리 균형을 택할수밖에요. 그런데 외재적 동기가 돈인 경우가 태반인데 거기에 무게중심이 쏠려진 사회의식이 좀 바뀌길 바랄뿐입니다. 영원히 풀리지않는 인간종자의 숙제같습니다.

항상 웃고 있으라는 사장은 @kmlee 님께 항상 웃고 있었습니까? 웃기네요

직원인 저한테는 웃지 않을 수도 있지만 카운터에서 손님들을 노려보더군요. 우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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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르바이트를 할때 가장 눈치보이는게 손님 없을 때 죠 ㅎㅎ 그 때는 청소라도 열심히하는게 정말 속편합니다. 참 아이들 가르치는면서 정말 고민많이 하는게 내적동기와 외적동기인데.. 참 내적동기를 잘 이끌어 내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쉽지가 않죠 ㅜ 오늘은 참 결말이 재미있는 글이네요 킴리님 : )

설마 사장님이 그걸 노리고...??!!!

그냥 단절된 상태라해도 좋은 글입니다. 내재적동기가 넘치는 사람이 되고싶네요~

외재적 동기로 인해 내재적 동기가 손상될 수도 있군요. 외재적 동기에서 시작했지만 내재적 동기가 싹트는 경우가 있다면 이 둘이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말하신대로 외재적 동기가 내재적 동기를 대개 손상시키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외재적 동기가 내재적 동기를 더 강화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kmlee님의 경우 외재적 동기(웃으며 마네킹처럼 서있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것)에 의해 청소를 시작했지만, 청소를 집중해서 꼼꼼하게 할 수 있었던 데는 어느 정도 내재적 동기도 작용한 것 같습니다. 단순히 내가 싫어하는 어떤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청소를 하는 것이라면 그 정도로 꼼꼼하게 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거든요. 청소 상황에서 kmlee님의 내재적 동기가 있었다면 그게 뭘까 궁금해지네요.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 한때는 정말 즐겼는데 요새는 즐기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스팀잇에서 나마 즐거움을 되찾고 있는데.. 요새는 뭔가 다른 감정이 생기고 있네요 ..

내재적 동기로 시작한 일을 정말로 즐길 수 있다면 행복할 거 같아요.
보통 예술분야의 일을 하시는 분들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물론 이유와 목적은 다르지만 저도 사색을 즐겼던 바,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멍때리기'로 보였던 모양이에요
바쁘게 치이면서 살다보니 이제는 사색도 쉽지 않네요

스팀챗 확인 바람

확인했습니다.

중간에 내재적 동기가 생기거나 , 처음부터 내재적 동기을 가지고서 시작을 했어야 외적보상이 어떻게 주어지든간에 상관없이 꾸준하게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데, 그 내재적 동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는 참 어렵지 않을까요? 설령 그러한 일을 찾아서 한다고 해도, 외적보상이 기대이하로 적게 나온다면, 내재적 동기를 나중에는 스스로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오히려 외적보상이 낮을 때 내재적동기가 유지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가난할 때는 열정으로 견디다 부와 명예를 얻고 나서 초심을 잃는 경우를 생각하시면 명쾌하겠죠.

저도 스무살때 처음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시간을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보낼지 고민하던 때가 있었기에 백분 공감합니다. 청소를 하는데도 시작 시간을 정하고 최대한 꼼꼼히 구석구석 했던 기억이 나네요.

요새는 스마트폰이라는 악마의 도구가 생겨서 무료한 아르바이트생을 찾아보기 어려워진거 같네요. 틈이 생기면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면 되니 ㅎㅎㅎㅎ

손님 없어도 책도 못 읽게 했거든요....

그래도 저는 아직까지는 내재적 동기가 큰 가봅니다.. ^^

재미있게 하던 것도 일이 되는 순간 재미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동기부여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재미없던 일도 재미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팀잇에는 동기부여를 해주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ㅎㅎ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요

엄청 길게 썼던 아까의 댓글은 삭제했어요

에혀 읽으셨다니
나머지 창피한 댓글도 삭제 할게요

수정하시기 전에 읽었습니다. 그렇게 부끄러울 일은 아닙니다. 앞으로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이 시간에 깨어 계시네요
비가 와요

제가 속이 좁은가 봐요
꽤 창피하거든요 ㅎㅎ

파스칼의 팡세처럼 @kmlee 님의 단절된 글이 감동과 가르침을 주는 것 같아 재미있게 고맙게 읽었습니다. 즐거운 어린이날 되시길!

저는 의미와 가치를 잃으면 더이상 아무것도 즐길 수가 없게 되는 거 같아요. 크든 작든 의미와 가치가 있을 땐 외적 보상이 없어도 충분히 즐기게 되니까요. 그 의미와 가치를 어디에 두는 가는 또 각각 다르겠죠. 그것을 끌어내고 찾아내는 것도 물론 다 다를 것이고요. 늘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하는 것은 그래서 더 중요한 거 같아요. 적어도 저에게는...

가끔... 머릿속이 아주 심난할 때.... 대청소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구석구석 눈에 띄지 않는 부분까지 다 닦아내고 쓸어내면서 마치 마음도 같이 닦아내는 기분이 들기도 하거든요.

때로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대청소를 하기도 하지요.

꾸욱하고가요

일에서 즐거움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정말 복인 것 같아요. 본인이 정말 사랑할 수 있는 일도 언젠가는 노동이 되버리니..

극한의 상황에선 외재적 동기(마이너스 동기라고 할까요?)만으로도 수행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극한의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느 순간엔 결국 내재적 동기가 필요한 시점이 오더라구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둔 사람들. 참 부럽습니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생존욕구가 하나의 내재적 동기가 되어 사람을 움직이는게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