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가 주된 쟁점이 아니다 – 땅의 세습에 대한 인간의 갈망 영화 <명당>

in #kr8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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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전도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한 세대는 가고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땅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영원하다. 현 시대에도 유산 계급과 무산 계급을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바로 땅을 소유하였는지다. 초등학생들 장래희망이 건물주, 즉 입대업자인 시대. 치솟는 땅값을 보며 박탈감을 느끼는 가지지 못한 자들과, 더 많은 땅을 소유하고자 하는 가진 자들의 욕망이 휘몰아치는 이 시점 대한민국에서, 이 양자 간의 욕망을 조율하지 못하면 정권을 지킬 수 없다.

훌륭한 묫 자리를 쓰기 위해 권력 간의 충돌이 일어나고, 몰래 겹장을 하는 꼼수를 쓰거나 살인까지 자행하는, 한 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는 영화 <명당>을 단순히 풍수지리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을까. 1970년대 강남 재개발을 다룬 영화 <강남>이 오버랩되지 않는가?

땅에 대한 욕망.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를 대대손손 물려주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은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일견 풍수지리가 그 주제인듯 보이는 이 영화가 제공하는 함의는 실로 오묘하다.



역사에 대한 재해석이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



<명당>은 역사적 배경을 알고 관람해야 재미있다.

지관 박재상(조승우 분)이 왕에게 묫자리가 잘못되었음을 간언하지만, 이를 명백히 기망하는 세력이 등장하고, 왕을 능멸한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처벌받기는 커녕 오히려 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시대에 대한 이해, 그것은 상가집에서 객기를 부리던 왕족(지성 분)이 자신을 “흥선군”이라고 소개하는 장면에서 단 한 번에 이해가 되어버린다.

그 순간,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세도가의 본관이, 명예훼손 등 각종 법적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변경되었음을 알게 되고 그 역사적 배경 앞에 풍수지리를 끼워넣은 극의 전개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흥미를 유발한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역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가 재미있었고, 관람 직전까지 이 영화의 배경 시대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가 더 즐거웠다. 흥선군이 등장한 그 시점부터 영화에 대한 몰입감은 실로 대단했다.

묫 자리를 쓰면 2대에 왕이 탄생한다는 '2대 천자'라는 그 단어에서, 본인이 아닌 아들을 왕으로 즉위시킨, 조선 역사에서 유일무이했던 왕의 아버지 '대원군'으로서 권력을 휘두른 그 사례와 접목이 기가 막혔고, 그 자리를 두고 다투는 클라이막스에서, 그 '2대 천자'의 자리는 묫 자리를 쓴 사람은 물론이고 국가의 대를 끊는다는 지관의 해석에서 다시 한 번 전율했다.

역사를 소재로 쓴 영화는 무수히 많지만, 소재 활용도 하나만으로는 내가 본 모든 영화를 통틀어 영화 <명당>을 일순위로 꼽고 싶다. 다소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각 배우들의 연기는 이 같은 절묘한 역사 활용에 비하면 작은 흠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은 여러 개가 있으나, 그 주축이 되는 해석 중 하나는 결국 역사란 유산 계급과 무산 계급이 충돌하며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소위 알고 있는 왕권과 호족 세력의 대립 역시도 이에 대한 연장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우리는 강한 권력을 휘두른 절대군주를 떠올리며 왕을 유산 계급의 대표자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으나, 오히려 고착화된 호족들 사이에서 자신의 힘을 키워가기 위해 무산 계급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고군분투한 왕도 많았고, 따라서 왕과 무산 계급의 일치된 이해 관계로 기득권에 맞서 싸운 사례도 많다.

선입견과 달리 더 강한 쪽은 통상 왕이 아니라 땅과 노동력을 독점하고 혼인 관계를 통해 끈끈히 연결된 호족 세력이었다. 이들은 대동법 같은 백성을 위한 제도를 막기도 했으며, 많은 왕들이 이들과 맞서다 폐위나 암살 같은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다.

그것은 현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는 집권 세력이 가장 먼저 맞닿뜨리는 현실 역시도 결국 콘크리트처럼 유착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다. 땅은 물론이고 이제는 미디어까지 소유하고 있는 이들의 철옹성 앞에 집권 세력이 백기를 드는 스토리는, 지금 시대에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우리는 소설 <삼국지>에서 환관이라고 하면 아주 악질 간신배들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권 없는 왕으로서는 종전의 카르텔에 대항해 이런 친위 세력을 키우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도 없었다. 후한의 몰락을 불러왔던 자들은, 식자 계층이었기에 기록을 통해 역사의 승자가 된, 관직을 독점하고 백성들을 수탈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청류'라고 불렀던 바로 그 자들이다. 그들의 프레임에 사회적으로 멸시 받던 환관이라는 존재는, 오직 부정적인 모습만이 기록되어 영원한 역사의 패자가 되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과연 이것이 과거만의 일인가? 똑같이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만, 현 시대에도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의 프로파간다 앞에, 일국의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졸이라는 이유로 끊임 없이 그 성과가 폄하된 사례를 이미 보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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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당>에서 왕이 무릎 꿇는 이 장면이야 말로 그 모든 역사적 현실을 한 번에 관통하여 이해할 수 있는 장치 아닐까 싶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 - 땅의 세습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 자신이 나고 자란 계층을 바꾸는 데에는 평균 5대가 걸린다고 한다. 즉 전 국토는 물론 족보도 잿더미가 되었던 6.25 전쟁 직후 모두가 똑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할 수 있던 그런 시대가 아니라면, 어느 집안 출신인가는 각 개인의 삶에 여전히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현대에도 '가문'에 집착하는 사람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타이윈 라니스터처럼, 각 개인은 결국 죽지만 가문의 이름과 자산은 영원히 남는다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의외로 흔하다. 소위 개방적으로 보이는 미국 사회조차도 사회를 주름 잡는 정치 명가들은 혼맥을 통해 그들만의 리그를 유지한다. 한국 재벌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가문에 대한 집착은 결국 '성씨'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남성 중심주의적이 될 수 밖에 없다.

한편으로 이것은 내재된 본능이기도 하다. 진화론적 관점에서만 보면 왜 그 같은 남성 중심주의적인 성씨와 유산의 전달이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주된 문화로 자리잡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수학적으로 두 개의 X염색체는 대를 넘어가면 선대를 추적해낼 수 없다. 하지만 Y염색체에는 명확한 흔적이 남아 아무리 대가 지나가도 그 근원을 밝히는 것이 가능하다(예를 들면 전 세계에서 5,000만 명의 남성이 같은 남자에게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유력한 용의자는 징기스 칸이다).

자연계에서도 여럿 관찰되고, 통상 여성은 평균 정도의 외모로도 남성들에게 많은 대시를 받는 경우에 반하여, 남성의 연애 권력은 상위 그룹과 중위 그룹의 격차가 매우 크다는 점에서, 수컷의 유전자가 전달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승자독식이다. 아들을 선호하고, 그 아들이 여러 사람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할 수 있는 알파 메일이 되는 데 도움이 될 물질 상속해주는 데 집착하는 사람들의 유전자가 인류의 다수가 된 것은 그런 점에서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실제로 아들을 가진 아버지는, 딸만 가진 아버지에 비해 재산을 모으는 데 더 신경쓰게 된다는 가설도 있으며, 장사꾼 출신으로 성격 좋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돌연 대륙 진출을 획책하고 조선을 침략한 것을, 뒤늦게 보게 된 아들의 탄생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수많은 문화권에서 그토록 집착하던 그 Y염색체는 X염색체에 비해 매우 불완전하다는 사실이다. 어느 사회건 남성의 범죄율은 여성의 그것을 압도하며, 유전병이나 면역력, 수명에 있어서도 남성은 여성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 게다가 후대에 전달하고자 하는 형질 역시도, 모계 유전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부계의 유전자는 잘 쳐주어봤자 20% 밖에 전달되지 않는다고 한다.

인류 역사 상 최고의 알파 메일로 꼽히는 줄리우스 시저는 정작 자신의 후대를 남기고 그 후대에게 재산을 남겨주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그는 양자에게 권력을 물려주었다). 학자들은 그 이유로 줄리우스 시저가 소 아시아에 파견되어 있던 시절, 능력 있는 아버지의 형질이 통상 아들에게 거의 전달되지 않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일본의 역사학자 시오노 나나미 역시도 아웅산 수지를 언급보며, 위대한 아버지를 닮는 쪽은 통상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해도, 딸의 경우 부모의 학업 수준을 그대로 물려 받는 경우가 많지만 아들 쪽은 크게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즉 진화론이나 유전학적 관점에서 아들에 대한 집착이 왜 탄생하게 되었는가 이해할 수는 있다만 실은 이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원시 동물도 아닐 뿐더러, '이기적인' 유전자가 좋으라고 사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 않나.

전술한 미국 드라마 <왕자의 게임>의 타이윈 라니스터, 가문에 집착하던 그의 가문은 부유했으나, 두 남매는 근친상간을 저질렀고 그는 아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영화 <명당>은 어떠한가? 2대 천자에 집착하던 장동 김씨의 김좌근(백윤식 분)이 맞게 된 결말 역시도 이보다 더 불행하면 더 불행하지 덜 불행하지 않다.



우리는 그 욕망을 극복해야 한다



진화론이나 유전학을 통해 인간의 습성을 분석하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접근법이다만 그것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성의 혼외정사나 성범죄에 훨씬 관대한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고, 재산도 남성에게 더 나누어주어야 한다. 얼핏 남자가 유리한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승자가 되고자 하는 그 본능으로 인해, 남성 중심의 사회는 수 없이 전쟁을 일으켰고 통상 전쟁이 끝나면 진 쪽의 여성은 이긴 쪽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편입되었지만 패배한 문화권의 남성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지금 시대에도 남성이라는 이유로 짊어져야 하는 맨박스의 무게는 크다. 이것은 한 줌의 알파 메일들이 행복하라고 대다수 남성과 여성들 모두가 피해를 보라는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생육하고 번성할 것을 가정하고 설계되지 않았다. 70억 명의 인구가 존재하는 이 시대에 모두가 승자가 될 수는 당연히 없다. '개인'이 아니라 '가문'이 돋보인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불공평이 세습된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가난하지만 서울대를 진학한 학생보다, 편하게 살다가 다른 사람들이 취업할 나이 쯤에 상가를 하나 상속 받는 사람이 선망 받는 지금의 한국이 과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나? 그것이야 말로 묫 자리 하나 잘 쓰면 끝인 풍수지리보다 더 비합리적인 것 아닌가.

풍수지리와 2대 천자에 집착하던 영화 <명당>의 집권층들은 결국 일제에 나라가 병합되고 자신들의 대마저 끊기는 결과를 보게 되었다. 한국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왕은 그것을 욕망하고 부러워하며 일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왕인 것이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에, 더 이상 욕망하지 않는 오포세대가 주축이 되어 가고 있는 이 사회에, 부동산 가격 상승만으로 나라 경제가 지탱될 수는 없다. 그것은 분명한 망국의 징조이다. 이게 더 심해져서 무산 계급이 혁명이라도 일으킨다면 유산 계급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영화 <명당>의 마지막 장면, 독립운동을 위해 무관학교를 세울 자리의 풍수를 잡아달라고 부탁하자, 지관이 사람이 모일 자리를 잡아주는 그 장면은 실로 유의미하다. 더 이상 인류 사회는, 그 유전자의 근원이 어떻든 간에 조그만 땅을 두고 가문을 세우는 그런 좁은 개념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인터넷과 블록 체인의 이 시대에서, 어느 나라든 간에 제대로 된 혁신을 만들면 그것은 순식간에 전 세계에 퍼지게 되고, 그 사람은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소위 말하는 그 플랫폼 비즈니스의 주역들은 주커버그나 스티븐 잡스 같은 미국인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예나 지금에나 땅에만 모든 관심이 쏠려 있는 그 모습이 안타깝다.

땅이 차지한 자가 아니라 결국 사람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자가 진짜 승자가 되었다. 이 영화가, 추후 남성중심적이고 토지중심적인 이 가치관에서 벗어난 어떤 세련된 노마드적인 문화가 탄생에 기여하길 바라는 것은 아마 무리겠지.

다만 이런 화두 정도는 던져볼 수 있다고 판단한다.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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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정말 유익한 영화네요
많은 교훈을 얻을것 같습니다!

ㅋㅋㅋㅋ 약간 배우들의 연기가 겉도는 느낌은 있었지만 괜찮았습니다^^

말 하신대로
해 아래에 새로운건 없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하네요
그렇기에
님이 말하신대로
신인류라고 따로 명칭이 불러질 만큼
진일보하지 않는한 세련된 노마드적인 문화는 무리지
않나 싶네요 ㅜㅜ

뭐 그렇겠지요 ㅋㅋㅋ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니 ㅋ 그래도 또 사람들 사는 방식이 급격히 변하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니 또 모르는거기도 하겠죠 ㅎㅎ

문채원때문이라도 꼭보고 싶은 영화.. ^^

ㅎㅎㅎ 저는 사실 문채원 연기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이 포스팅에 영화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담긴 것 같아요.^^

헤헷 과찬이십니다^^

인류는 점점 에너지 자급쪽으로 나아가면
땅에 대한 갈망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주커버그나 잡스는 넘는 그 누군가가 나온다면....

그렇게 되겠죠 ㅎㅎ 다만 일단 저희 세대 역시도 그 부동산이 삶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는 걸 그냥 보게만 되는군요 ㅋㅋ

흥미롭군요... 기억해뒀다가 이거 한번 보도록 해야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제취향의 영화인듯 합니다 ㅎ

ㅎㅎㅎ 저는 이런 류의 사극이 참 좋더라고요^^
한 번 꼭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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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영화 안봐도 될꺼같아요
ㅋㅋㅋㅋ 멋진 후기에염

훗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