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를 떠나며

in #kr5 years ago (edited)

378db97956.png

** 근 10년 전 기독교 신앙을 떠나며 쓴 글입니다. 특정 종교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으니 그냥 재미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예전 기독교 전도왕이란 남자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육사 출신의 인상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길거리 전도왕이 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자기 와이프는 기독교인이었는데 본인은 아니었다. 와이프가 꼬박꼬박 주일성수를 하는 바람에 가족끼리 주말 여행을 갈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교회를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와이프와 애들을 차에 실어 여행을 가던 중 교통 사고가 나서 그날부로 하나님 무서운 줄 알고 전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딸은 그 사고로 온 얼굴에 흉터가 생겨 아이들에게 놀림거리가 되었다. 전도왕은 자기 딸이 하나님으로부터 치유 받아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가 전도 수단으로 흉터가 사라지는 기적을 말하고 다니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그 치유란 정신적인 위로를 뜻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어떤 야쿠자 보스에게 주말마다 인사를 하러 오는 여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여자의 남편이, 자기 배우자의 그런 행동이 싫어, 아니 딱히 싫지는 않지만 하루 정도는 가족끼리 여행을 가고 싶어 그 인사를 빼먹었는데, 인정머리 없는 야쿠자 보스가 그 가족을 풍비박산을 냈다면 그 남자의 반응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아이쿠, 야쿠자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제 평생 당신을 위해 살겠습니다!'

이것일까?

만약 어떤 인격신이, 한 집의 가장이 겨우 시간을 짜낸 오랜만의 가족 여행이 주일성수라는 계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그 가족에게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어린 여자애가 여자로서 평생 사랑 받으며 사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면, 그 인격신은 이루 말할 데 없이 부도덕하고 악한 존재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신자들은 원래 인간은 신의 섭리를 다 이해할 수 없으니 일단 믿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창조주라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지성을 가지게 인간을 만들어놓고, 왜 덮어놓고 믿지 못하냐고 말하는 자기 자신을 먼저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 아닐까. 게다가 성경과는 명백히 배치되는 수많은 증거가 유혹하는 세상이라면 말이다.

기독교의 핵심 논리는 [인간의 원죄] -> [심판] -> [구원]이다.

도대체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아인슈타인이 지적한 것처럼, 자기가 창조한 피조물의 죄를 심판하겠다는 인격체는 제 정신일까.

어떤 부모도 자기 자식의 행동을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을 뿐더러, 때로는 멀쩡한 부모 밑에서 싸이코 패스 같은 놈이 나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아이가 잘못하면 먼저 욕을 먹고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 아이의 부모이다.

인간을 창조한 존재라면, 그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의 일차적인 책임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인간의 그 '죄'란 빠져나갈 구석이 보이지 않는, 기독교의 논리대로라면 전 세계 인구 90%가 지옥에 가야하는 그런 죄이다.

불량률이 0.1%만 되도 난리가 되는 게 인간 사회인데, 그보다 훨씬 수준 높은 신의 세계에서는 10%를 구원하기 위해 죄에 넘어갈 수 밖에 없는 90%를 불에 태우겠다고 앉아 있다.

나는 믿어서는 손해볼 게 없다는 불가지론 같은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영원히 불에 타야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끔찍한 일이 될 수 밖에 없으니, 그 유구한 공포 마케팅의 역사 앞에 파스칼 같이 똑똑한 사람도 기독교를 믿곤 했다. 믿어서 손해볼 것은 없으나 여하간 적은 가능성이라도 그 인격신이 실재한다면 대가는 크니 말이다. 나 역시도, 기독교의 신앙이 별다른 대가를 요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교회를 다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내게 있어 기독교란 저주와 불행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니까.

성도들 간의 사랑, 하나님의 역사하심 등등, 그런 따뜻한 개념은 내가 아는 기독교와 거리가 멀다. 논리적 취약점과 별도로, 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기독교가 사랑이었다면 굳이 그곳을 떠날 이유가 없었다.

간단히 말해 기독교란, 내 인생 모든 문제의 원죄와 같은 존재였다. 그것만 없었다면 내 삶은 더 행복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나는 막대한 리스크를 안고 기독교의 신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모태신앙이었다. 독실한 어머니 밑에서 매일 성경을 읽으며 그 방침대로 살 것을 강요 받았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종교적 학대에 가까웠다. 어머니는 자신이 예언을 할 수 있다고 믿었고(이단 종파의 신도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정통 기독교의 대형교회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꽤 많다), 내게 그 예언대로의 삶을 종용했다.

일례로 내 어머니는 내가 수시 면접을 보러 가기 1시간 전에,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으니 탈락할거야.'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 어머니의 말은 사실이 되었다. 아마도 어머니는, 후일 결국 정시로 들어가게 된 그 대학이 당시 눈 높이에는 맞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누군가 그런 자기중심적인 악담을 퍼붓는다면, 그런 의도까지 생각이 미칠 것이고 아마 그 사람 인격을 비웃고 말겠지. 하지만 소심했던 10대 시절 내게는 어려서부터 믿었던 신의 이름을 내세운 그 묵시에 대처할 능력이 없었고 면접에서 죽을 쑤고 말았다.

그래서 어머니의 그 예언은 맞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어머니의 그 묵시들은, 반항적인 10대를 벗어난지 꽤 오래된 지금 생각해도 꽤 비합리적이었고, 시간이 지나 제 아무리 변명하기 좋아하는 사람조차도 맞았다 틀렸다 중 하나로 밖에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단순히 어머니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10대 때 나는 내 주변 환경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로만 인식했다.

예시를 들면 아래와 같다.

어떤 친구와 사이가 나빠졌다. 그렇다면 내 태도 어디가 문제이고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올바른 접근법이다. 시험을 못봤다면, 공부 방법 중 무엇이 잘못됐는가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난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또 신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곱씹으며 두려움에 떨었다.

아마도 이게 내 인격의 성장 수준이 평균보다도 꽤 뒤쳐져 있었던 결정적 이유 아니었을까. 내 괴팍한 성격을 아는 사람은 그저 핑계 취급을 할지 모른다만, 글자를 읽을 수 있을 무렵부터 매일 성경을 한 시간씩 읽은 아이의 정신 상태가 다른 아이들과 같았을 거라고 쉽게 추단하지는 말아라.

어린 시절부터 내가 보고 느낀 신은, 아주 살벌할만큼 도덕적인 결벽이 심했다. 그래서 마스터베이션 한 번을 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고, 분노를 느껴도 거친 말로 그것을 표현하지 못했다.

특히 기독교의 신을 믿는 것은, 2가지 지속적 문제를 제공하였는데, 하나는 도덕적 강박으로 인해 내가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직면할 기회를 놓치게 하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위에 언급한 모든 과정이 예민하던 어린 시절 상상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집안에 어떤 유전자 문제도 없는데 한때 꽤 머리숫이 없었다. 아버지는 180이 훨씬 넘는 장신이고 어머니도 키가 큰 편이지만 나는 키가 크지 않다. 나는 다른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없다.

기독교의 신이 내게 요구하는 삶은 붓다가 버린 고행과도 같았다. 이유도 모른채, 그저 미래에 내가 널 높이 세워주겠노라 그러니 지금은 무조건 참아라, 이런 식이었다.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내게 상존할 컴플렉스들은 대부분 이때 만들어졌다.

참 재밌었다.

​차라리 이슬람교처럼 '신의 뜻대로' 이런 말 한 마디로 아예 포기를 시키던가. 실날같은 희망으로 고문을 하며 늘 약을 올리더만.

어차피 주어진 문제가 내가 감당할만한 것이 아니었다면, 나는 왜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던걸까?

​무너지는 댐의 구멍을 막기 위해 자기 팔을 집어넣은 사람, 그 사람이 감내해야하는 것이 일방적 희생이요, 쏟아지는 것은 격려가 아니라 비난과 조롱이라면 그 사람은 응당 그 팔을 빼야한다. 설령 그 댐이 무너져 모든 사람이 죽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 시절 내가 마주했던 그 인격체가 정말로 기독교의 인격신인지, 아니 그래도 명색이 세계 3대 종교의 신인데 그렇게까지 인격이 조악할 수가 있는지, 아니면 그저 잡귀에 씌였던 것인지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른다.

얼마 전, 나는 내 삶이 어떤 절대자에 의해 연단받고 있는 기분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절대자가 기독교의 인격신이라는 생각은 전혀 할 수 없다. 불행한 일에 겸허히 감사할 수는 있어도, '기독교'라는 소름 돋는 역겨움을 내 삶에 다시 주워담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과연 겨자 씨만한 믿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난 회의적이다.

​예전 바이킹들이 수녀원을 약탈하고 수녀들을 강간했을 때, 수녀들은 겁탈 바로 전까지도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주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만,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강간은 강간이었던게지.

그녀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한, 신이 내 절실했던 기도를 들어준 적은 없다.

'현실' 이상의 것이 존재함을 보여준 적은 더더욱 없다.

그런 모호한 실체를 믿고, 지금 삶을 28배 정도 더 불행하게 사느니, 그냥 영원히 불타는 지옥이라는 무시무시하지만 작은 가능성을 안고 그렇게 살란다. 내가 아는 기독교의 '그 신'에게 굴종하며 사느니, 차라리 남은 생을 베트남 틱광둑 스님의 소신공양을 연구하는 데에 전부 쓰는 것이 나을 것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전도를 하러 다녔지.

지금 생각하면 퍽이나 비참하다.

전도를 했다는 게 비참한 게 아니라, 애 늙은이마냥 재미 없게 살았던 꼬맹이가 자기보다 훨씬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예수님 믿으면 더 즐겁다고 말하고 다녔던 게 가장 서글프다.

나이가 들며 증오도 어느 정도는 희석되었다. 성경이 아니라 자기 의지대로 산다고 해도 여전히 잘 안 풀리는 일 투성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그 이전보다는 늘 나았다. 기독교를 떠나고 가장 힘들었던 순간조차도, 그 신을 믿었을 때보다는 평안했으니까. 학창시절, 내가 교과서에 붙이고 다녔던 "주의 궁전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낫다."는 시편 84편은, 정확히 반대 의미로 내 삶에 작용하게 되더라.

사람을 머리 숙이게 하는 것은 고매한 인격이지 폭력이 아니다. 내가 오랫동안 바라본 기독교 신은 마치 권력을 쥔 5살짜리 황제와 같았다. 그런 존재는 두려움과 회피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결코 존경의 대상은 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적으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나는 무수히 귀신을 보았다. 내 옆에서 자다가 이상한 꼴 당한 사람도 많다. 어렸을 때는 그게 익숙한 일이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의외로 문제가 많은 삶이더라.

근데 이런 이야기를 토로하면 누군가는 나보고 목사가 되라고 하고, 누군가는 나보고 무당이 되라고 한다.

​열심히들 지껄여봐라.

​​인간의 의지라는 것은, 전우주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시답잖은 뇌수 찌꺼기에 불과한지 모르지만 평범한 유인원들이 믿는 미신 체계보다는 강하다. 현실에 반하는 결과가 닥쳤을 때, 사람들은 더 믿음에 집착한다. 이교도가 짓밟고 들어오자 성당이나 모스크에 뭉쳐 기도하던 비잔티움이나 예루살렘의 시민들이 그러했다. 한데 뭉쳐있던 그들은 마치 축사의 가축마냥 도축당하고, 겁탈당하고, 팔려갔다.

​한 해 수만명의 사람들을 인신공양하던 거대한 제국은, 원래 돼지를 치던 천출, 출세욕에 불타던 한 인간의 의지와 단 오백 명의 용맹한 군인들로 인해 절멸되었다.

​흔적도 남지 않은 그 문명들에도 아마 잡귀는 많았을 것이다.

​물론 내게는 적들을 굴복시킬 강철 같은 의지는 없다. 하지만 내가 당신을 존경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이상, 어차피 당신은 승리자가 아니다.

내 삶이 어떤 실패로 내몰리고, 사후에 어떤 재난이 있을지라도, 물론 당장의 고통 때문에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를 수 있겠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 깔려있는 경멸과 반발심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당초 내 머리 속 상념을 제거하기 위해 쓰여졌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것으로 그치기보다 좀 더 유용하게 써먹을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현존하는 문제들, 내 삶을 통제하고 억누르고자 애쓴 그대들의 반지성주의가, 내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가, 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앞으로 내가 취할 모든 '합리적 행동'에 명분을 부여하고자 한다.

​대대손손 침략하고 약탈할 것이다.

​- 2011년 9월 12일

Sort:  

간단히 말해 기독교란, 내 인생 모든 문제의 원죄와 같은 존재였다. 그것만 없었다면 내 삶은 더 행복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나는 막대한 리스크를 안고 기독교의 신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공감이 가네요. 저 역시 모태신앙이었지만 신을 버리고 더 행복하게, 아니 최소한 제멋대로 살고 있습니다. ^^

오랜만이시네요 ㅎㅎㅎ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Hi @admljy19!

Your post was upvoted by @steem-ua, new Steem dApp, using UserAuthority for algorithmic post curation!
Your UA account score is currently 4.445 which ranks you at #2277 across all Steem accounts.
Your rank has dropped 40 places in the last three days (old rank 2237).

In our last Algorithmic Curation Round, consisting of 166 contributions, your post is ranked at #108.

Evaluation of your UA score:
  • Some people are already following you, keep going!
  • The readers like your work!
  • Try to work on user engagement: the more people that interact with you via the comments, the higher your UA score!

Feel free to join our @steem-ua Discord ser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