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 멀고도 가까운 공포

in #kr7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Bonesgirl입니다:)
저는 원래 소설 습작도 깨작깨작 하는데요, 생각만큼 잘 나오지는 않아서 매일매일 머리를 쥐어 뜯고 있습니다....ㅎ
요즘 날씨가 부쩍 무더워졌는데, 특히 낮에 창문을 열어두면 동네 아이들이 뛰놀며 마구 소리지르는 게 들려서 괴롭습니다..
항상 이맘때 쯤이면* Summer is coming...* 을 외치곤하죠.. 무서운 여름이 다가오고 있어요.........

이 책을 다 읽은 건 꽤 되었는데, 리뷰를 올리기까지는 또 시간이 지나버렸네요.. :(
바로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여운이 엄청난 대신 생각이 정리가 잘 안되어서 이제야 슬쩍 올려봅니다.

그러고 보니 책 한 권을 완독한 것도 참 오랜만이었어요. 대학에서 어문학 관련 전공을 했기 때문에 책과 ‘관련’은 많다고 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책을 읽을 기회는 많이 없었어요. 책을 읽어도 뭐... 보통 전문 서적을 읽지, 특히 소설을 읽을 기회는 거의 없었죠.
원래 책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읽을 여유는 없어서 항상 옆에 끼고 살기만 했답니다...
대학에 가기 전에만 해도 공부하기가 싫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책을 참 많이 읽었어요. 그땐 정말 책을 다 읽으면 한 바닥 빼곡하게 감상을 적어내리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책을 읽는 것조차도 굉장히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 책을 읽고 감상을 남기는 일이 제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부담을 느끼게 되어 그런 것이 아닌가 해요. 순수하게 즐기던 것이 의무가 되어버리면 당연히 하기가 싫잖아요..?

그런 독서의 어려움을 겪는, ‘책 못 읽는 병’에 걸린 저로서는 책 하나를 완독했다는 게 엄청난 일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읽었다는 건 그 책이 정말 재미있고, 흡인력도 있다는 거니까요. 단편집은 호흡이 짧기 때문에 종종 읽었지만, 장편 소설은 정말 다 읽어 본 게 언제인지 잘 기억도 안 나거든요.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은 2013년에 출판 된 장편소설입니다. 줄거리는 간단하게도 요약 할 수 있어요. ‘정글’이라는 여행사의 수석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주인공 ‘요나’가 ‘무이’라는 여행지에 가게 되고, 그 곳에서 많은 일들을 겪는 이야기‘ 라고 이야기의 진행만을 짧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이런 표면적인 서사 곳곳에 포진해있을 이면적인 의미들을 알아가는 것이 소설 읽기의 한 묘미라고 할 수 있겠죠. 저는 <밤의 여행자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도 마음에 들었고, 스토리 역시 흥미를 잃지 않고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재밌었습니다. ’톤‘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는데, 이 작가가 사용하는 단어(특히 타이틀)가 취향에 맞더라고요. 참 좋은 소설이었는데, 왜 좋았는지 한 번 소개해볼까 해요.

매력적인 타이틀
이 책을 샌프란시스코의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한국에 돌아와서까지 읽어 볼 생각을 한 것은 일단 이 책의 제목과 챕터를 나누고 있는 소제목들이 참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어요. 물론 문학적 체험은 그 사람의 바탕이 어떠냐에 따라 그 누구나 각각 다르기 때문에 ‘밤의 여행자들’이라는 제목이 아무 느낌도 안 들고, 소제목들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느낌이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게는 정말 제 취향 바운더리(?) 안에 쏙 들어가는... 이런 걸 뭐라 하죠?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가는? 그런 단어들이었어요. ‘밤’, ‘여행자’, ‘사막’, ‘마네킹의 섬’, ‘맹그로브 숲’ 같은 단어들이 무언가 제 마음을 뒤흔들더라고요. 각각의 단어들로 연상되는 이미지가 굉장히 생생하고, 막연한 공포가 느껴졌어요. 그 점이 매력적이었죠. 처음에 차례 페이지를 펼쳤을 때는, 각 장의 제목들이 각각 개성적이고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이 책을 단편집으로 착각할 정도였죠. 장편 소설임을 알고 나서는 그렇다면 이 따로 노는 것 같은 각 장들이 어떤 끈끈한 연관성을 갖고 이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을까 궁금해졌고요.

멀지만 가까운 공포
학창시절에 한창 ‘온다 리쿠’라는 일본작가의 소설들을 탐독한 때가 있었는데요, 재미있는 책들이 많았지만 재미와는 또 별개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어요. <메이즈>라는 작품인데요, 저는 그 책을 읽고는 너무 무서워서 난생처음으로 혼자 방에 있는 게 무서워졌었어요. 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메이즈>가 가장 무서운 소설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예요. <메이즈>에서는 아마 ‘두부’라고 표현했던 것 같은데, 마치 두부같아 보이는, 미스테리어스 한 하얀 구조물에 대한 묘사가 나와요. 그 심플한 구조물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생생해서 머릿속에 그걸 보고 있는 듯 이미지가 강렬했고, 정말 미지의 공포가 실감나게 다가왔어요. 음.. 이렇게만 설명하면 정말 그 느낌이 어떤 건지 모르실 것 같은데, 저는 정말 그 책을 읽고 정말 문자그대로 소름이 돋고 추웠어요.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읽어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밤의 여행자들> 역시 읽으면서 무서움을 느끼게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서움의 종류는 <메이즈>에서 느낄 수 있었던 무서움과는 느껴지는 양상이 달랐어요. 정말 현실적으로, 바로 감각적으로 공포를 느꼈던 <메이즈>에 비한다면, <밤의 여행자들>은 뭐가 무섭냐,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메이즈>도 그렇고 ‘온다 리쿠’의 소설들은 애초에 ‘미스테리’를 기저에 깔고 가는 작품들이 많거든요. 그런 경우, 어쩌면 무서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 지도 몰라요. 그런데 <밤의 여행자들>은 그런 온다리쿠의 소설들과는 완전히 결이 다르죠. 장르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 아마 느낄 수 있는 그 감정, 공포도 좀 다르겠죠.
<밤의 여행자들>은 즉각적인 공포감을 유발하지는 않습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조금 ‘불길함’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절대 무섭지는 않거든요.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며 독자는 주인공 ‘요나’가 겪는 감정을 체험하고, 요나와 함께 끝을 향해 두려운 발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아마 ‘요나’라는 인물에 얼마나 동질감을 느끼는지에 따라 느껴지는 공포의 정도도 많이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인공 ‘요나’가 굉장히 가깝게 느껴졌고, 아마 그래서 더 무서웠던 것 같아요. 요나가 처한 상황을 혹시 내가 겪는다고 상상해보면, 정말 소름이 끼치고 무섭더라고요. 벗어나기 어려운 곳에 있는 상태로 점점 올가미를 조여 가는 시간과 어렴풋이 자신의 파국을 짐작하는 주인공의 입장을 생각해보니, 만약 나라도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주인공 ‘요나’는 ‘여행’을 떠나 해외에 있기에 물리적으로는 멀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와는 거리가 먼 공포로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요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요나를 파국으로 등 떠밀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나에게 초밀착된 현실적인 상황이 유발하는 공포는, 소설 속 인물 누군가가 겪는 초현실적인 공포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나 ‘있을 법한 일’의 공포였기 때문에 더 무서웠던 게 아닐까요. ‘나’의 경우를 생각해보기 때문에 무서운 거고, 결국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니, 이건 정말 좋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윤고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지는 작품 **
<밤의 여행자들>을 끝까지 놓지 않고 집중력 있게 읽어내려 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주인공 ‘요나’였습니다. 요나라는 인물에게 쉽게 공감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요나의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 ‘요나’의 캐릭터가 매력적이라기보다는, 정말 살아 숨 쉬는 현실의 인물인 것 같기에 그 인물의 행보에 궁금해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요나’라는 인물을 구성하는 환경에 대한 묘사들이 현실에 밀착되어 있었습니다. 정글이라는 회사, 회사 안에서의 요나의 위치, 그 안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 등... 그 중에서도 여성이라는 성별을 갖고 느낄 수 있는 현실의 불합리나 불쾌함을 너무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나는 나이거나 내 친구거나, 내가 아는 언니가 될 수 있다고 느껴졌으니까요.

<밤의 여행자들>은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근미래의 서울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저는 이 책에서 드러나는 근미래에 대한 비전도 좋았습니다. 허무맹랑한, 그저 반짝이는 상상력의 세계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모습이 축적되어 온 미래라는 느낌이 바로 들었기 때문에요. ‘재난’이 휩쓸고 간 지역을 관광하는 ‘재난 여행’을 팔고, 소비하는 시대라니 암울하지만, 이것은 근거 없는 ‘예측’의 미래가 아닙니다. 재난 여행을 하는 의미에 대해 ‘요나’가 추측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내 삶에 대한 감사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어느 단계까지 마음이 움직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국 이 모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니까 재난 가까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전했다, 는 이기적인 위안 말이다. - p61

사실 현재 인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적인 사고들- 병폐적인 자본주의 (별 걸 다 사고파는), 이기심, 어줍잖은 교훈을 얻겠다는 마음, 불행한 타인을 보며 얻는 우월감 등- 을 잘 짚어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윤고은의 <아이슬란드>라는 단편을 읽어 본 기억이 납니다. 저는 실제로 언제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고, 여행을 가서 새로운 기분으로 뭔가 영감을 받게 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행을 테마로 한 <아이슬란드>도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었습니다. 저는 여행의 비현실성, 새로운 감각 자체를 즐기고 그걸 제가 쓰는 글 (소설 습작도 종종 하거든요..) 에 녹여내는 정도이지만, 윤고은은 여행의 비일상적인 면, 보통 여행의 표면적인 목적과 의미로 여행을 다뤄내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적이고 흥미롭다고 느꼈습니다. 이 <밤의 여행자들>에서도 여행은 결국 현실적인 공포가 실체화되는 시공간의 기능을 하고 있고요.

주변 지인에게 듣기로는 이 작품 이후로 작가의 작품세계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 이후의 작품들은 어떤 색채를 가지고 어떤 메시지를 담는 작품들일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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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뷰 잘 보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winter is comming... 과 온다리쿠라는 두 단어보고 있다가 전체 포스팅을 읽게 됬네요ㅎㅎ
개인적으론 온다리쿠의 빛의 제국을 참 재밌게 읽었는데,
윤고은씨 책도 읽어봐야겠군요!

왕좌의 게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문장이죠!! 저는 여름이 더 무섭답니다...ㅠㅠ 맞아요 온다리쿠 소설 중에 빛의 제국도 유명했어요! 하도 이것저것 읽어서 제가 읽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네요..ㅠ 온다리쿠 소설과는 확실히 다르지만 윤고은 작가의 소설도 여운이 남고 괜찮은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