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눈] 더 이기적인 사회를 꿈꾸며

in #kr6 years ago (edited)
대학 시절 가끔 듣던 말이 있다.

“가끔 보면 넌 되게 이기적이야”

왜 가끔 보면 인정해주기 싫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달변인 데다 누구 앞에서든 당당하고 능수능란한, 한마디로 정치적인 사람들, 그게 나라는 것이다. 실력으로 승부 보려 하지 않고 왠지 모르게 편법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려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그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나의 이익에만 충실했고 이것이 잘못된 길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책으로만 배우던 학생 시절에는 ‘이기심’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여럿일 수도 있다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이기적인 건 절대악, 이타적인 건 절대선이라고 배웠으니까. 어쩌면 이러한 낭만적 미신 때문에 ‘착한 아이 증후군’을 겪고 있는 환자들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이타적으로 보여져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인간의 본성을 인위적으로 거스른다. 수만 년에 걸쳐 형성된 인간의 유전자가 단기간에 교육이나 강압으로 바뀔 수는 없다. ‘이기심’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이 세상 가장 이타적인 사람조차도 이기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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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이기심’을 오해하면 안 된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정의한 ‘이기심’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이기심이었다. 남이 불행하기만을 바라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것 같으면 스스로를 자제하는 자애를 베푸는 동시에 정당한 방식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심리다.

나는 인간의 본성인 ‘이기심’이 세상을 발전시키는 힘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기심’이란 사익추구와 분리될 수 없는 개념인데 이는 ‘경쟁’으로 이어진다. 애석하게도 다수의 사람들은 ‘경쟁’이라는 단어 자체를 불편해한다. 괜히 꺼림칙하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쟁이 고통스럽다고 한다. 친한 친구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경우도 있고 배신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단순한 제로섬 게임으로 끝나지 않는다. 단절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연결된 과정이다. 게임의 종류와 상대를 달리하여 경쟁은 무한 반복된다. 승자와 패자가 정해진 것도, 항상 같은 종류의 시합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반복성과 비교우위를 통해 경쟁은 제로섬 게임이 아닌 사회적 협력의 기초로서 기능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기심'에 대한 개념적 돌파가 필요하다. ‘이기심’은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에 더 가깝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삶이 척박해질수록 사람들은 경쟁을 멀리하고 이타심에 호소하게 된다. ‘성장’, ‘경쟁’, ‘개인’, ‘자본주의’보다는 ‘분배’, ‘평등’, ‘공동체’, ‘사회적’이라는 단어에 눈을 돌리게 된다. 끊임 없이 자신과 비교해 나보다 더 잘생긴 사람, 나보다 돈이 더 많은 사람,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헐뜯는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된다. 그들이 '평등하게' 자신과 같아지길 원하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인 공자는 정명(正名)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우쳤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언어가 순리로 통하지 않고, 언어가 순리대로 통하지 못하면 그 어떤 일도 성사되지 않는다. 일이 성사되지 못하면 문화·도덕이 일어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세상은 혼탁해지고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소통을 이룰 수 없으므로 이를 바로잡는 것이 모든 일의 첫걸음이다.

일본 식민지 시대,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 군사 혁명과 경제건설, 새마을 운동, 중화학 공업화 성공, 민주화 요구 및 쿠데타의 악순환. 대한민국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아픔이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 더 성숙해졌으며 더 견고해졌다. 하지만 나의 불행을 남의 탓이라 하는 사회, 성공한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노력은 하지 않고 무엇이든 바라기만 하는 사회 풍조가 계속된다면 더 이상 이 나라엔 희망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더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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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즘 포스팅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한데, 이타심도 사람의 본성이자 본능입니다. 애써 갖고 있는 '염치'를 무시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 위해 발달한게 이타심인걸요. 이 포스팅에서 특히 분배 정의에 대해 적었는데, 혹 관심있으시면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정의감과 도덕성을 함부로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으로 치환시킬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분배의 문제를 꺼내어 놓는 것은 남의 잘난 능력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명 '수저론'으로 표현되는 부의 세습 문제 아닙니까. 물론 글쓴이가 말씀하고 싶으신게, 사회 계층의 고착화 문제까지 옹호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만, 저는 현재의 사회 문제가 개인의 불평 불만에 있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이미 1만년전 이후로 크게 달라진게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시대에 들어 사람들이 불만을 더욱 표출하기 시작했다면, 요즘 사람들의 유전자가 갑자기 못나져서 그런 것일까요? 갑자기 부모세대가 문화를 바꿔서 자식들을 잘못길러서 일까요? 그보다는 사회 계층의 유동성이 떨어지고, 진짜 능력있는 사람이나 마땅히 보상을 가져가야 할 사람이 못가져가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사회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우선 '부의 세습' 자체가 문제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것이 공정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서 얻어진 부라면요. 제가 이 포스팅에서 꼬집고 싶었던 것은 "이기심"을 무조건 나쁘게 보는 사회 분위기였습니다. 입시경쟁, 취업경쟁, 스펙경쟁, 결혼경쟁 등 사회 전면적인 면에서 경쟁이 심화되다보니 경쟁이 과열됐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경쟁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sleeprince님께서 말씀하셨던 "사회 계층의 유동성", "진짜 능력있는 사람이나 마땅히 보상을 가져가야 할 사람이 못가져가게 되는 상황" 또한 공정한 경쟁, 깨끗한 경쟁을 통해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쟁", "이기심"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는 것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 시스템을 만들어 정말 실력있는 사람이, 정말 노력한 사람이 그 보상을 가져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더 의미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위 포스팅도 배우는 자세로 읽어보겠습니다.

아마 사는 곳이 다르고 만나는 사람도 달라서, 사회에 갖고 있는 시선이 다른가 봅니다. 글쓴이께서는 '경쟁이 과열됐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지만, 저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거든요.

사실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이기심과 이타심의 단어 사용에 혼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기심과 경쟁은 아름다운 것인데, 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져야 하는지요? 아담스미스가 말한것처럼 이타심이 이기심의 제한요소 아닌가요? 특히 공정한 경쟁과 깨끗한 경쟁을 통해 "사회계층의 유동성", "마땅한 자에게 마땅한 보상"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하셨지만, 그 공정함과 깨끗함이라는 기준은 결국 이타성이지 않습니까. 이기심에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지 않는다면, 공정함과 깨끗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그리고 이미 이타성에 의해 제한된 이기심을 더이상 이기심이라고 부를 수 있나요?

혹시 글쓴이의 이기심이라는 개념에 이타심을 포함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이기심'이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은 그 안에 포함된 '이타심'이 있기 때문에 부정적이지 않게 되는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는지요?

현재 대한민국은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매해 비대해지는 정부의 힘과 크기, 오히려 암시장와 부정부패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니까요. 이기심과 경쟁이 아름다운 것인데 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물으셨지요. 그에 대한 답은 질문 안에 있습니다. 이기심과 경쟁이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공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이 두 가지는 본래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100%의 보상이 갈 수 없는 구조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공정함과 깨끗함의 기준이 결국 이타성이라는 말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습니다. 물론 '아' 다르고 '어' 다르지만, 저희 둘은 이기심과 이타성을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평소에 생각해왔던 것들을 따로 시간 내어 공부해보지 않고 일기쓰듯 끄적였는데 @sleeprince님의 우문현답에 또 다시 돌이켜보게 됩니다. 제 의도와는 다르게 주제가 벗어났다면 그건 아마도 부족한 제 필력 때문일 겁니다.

네 단어 사용을 다르게 하고 있어서 그런걸로 짐작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기심과 그냥 경쟁은, 필요하다면 부정부패는 기본이고 사람을 죽여도 되는 것이지만, 그런 것을 말씀하는 바는 아니라고 압니다. 저는 두 단어를 조금 더 일상용어에 가깝게 쓰고 있고요. 용어의 정의로 말꼬리 잡지 않더라도 지금까지의 대화로 충분히 어떤 말씀을 하려는지 알겠습니다.

그래도 생각이 전혀 다른 것은 명확하네요ㅎㅎㅎ 재밌습니다. 이 정도로 자유주의적인 시각을 가진 분은 만나기 쉽지 않거든요.

"필요하다면 부정부패는 기본이고 사람을 죽여도 되는.." 이 구절은 상당히 반자유주의적입니다. 개인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이니까요. 학부시절 아담스미스부터 미제스, 로스바드까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스트리아학파를 좋아하는 동시에 다른 경제이념들도 두루 배워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주 소통했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네, 그래서 글쓴이의 언어정의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비전공자가 전공자에게 많이 배워야지요ㅎㅎ 저는 법학전공했고, 전자공학 전공했습니다. 주전공 부전공으로 한 게 아니라 둘다 주전공으로 했습니다. 그래도 인문보다는 과학을 좋아해서 포스팅도 과학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