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삶을 마치려던 해보다도 일 년을 더 살았습니다

in #kr4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스팀잇에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지 벌써 2달 가까이 되었네요. 시간이 무척 빠릅니다. 요즘, 건강 잘 챙기고 계신지요. 꼭 건강하게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가까운 지인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조금 많이 진솔한 이야기입니다. 쓰고도 반년 간 묵혀두다가, 오늘에서야 꺼내봅니다. 한 분의 독자라도 이 글을 읽고 희망을 얻으셨으면 하는 아주 조그마한 바람에 기인한 용기로요….



삶을 마치려던 해보다도 일 년을 더 살았습니다

요아글

스물넷, 삶을 마치려던 해보다도 일 년을 더 살았다.

생을 끝내고자 했던 이유는 인류에 대한 미움이었다. 거창하게만 느껴지는 인류에 대한 증오는 빤하게도 가족이 기원이었다. 일정한 시각을 짚을 수 없을 정도로 어린 날의 나는 그들이 하루빨리 이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었다. 아버지라는 이름을 단 소년은 사기를 당할 때면 그의 아이를 불러 자살 계획을 내비쳤다. 아이는 그런 부모가 증오스러웠으나 사회에서 가장의 부재란 단순히 아버지의 상실이 아니었음을 익히 알았다. 그렇기에 머리맡에 바가지를 두고 술에 곯아떨어진 소년 곁에 편지를 두고 잠이 들었다. 지구에서 사라지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뒤에 한 줄의 문장을 더 붙일까 주저하다 지웠다. 그 기억만은 또렷하다.


할머니와는 이십 년을 살았다. 내 시선에는 강압적으로 생판 모르던 여자를 삶에 품어야 하는 어머니가 가장 동정받을 사람이었지만, 할머니는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 여기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불행을 우선시하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큰 특징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타인을 독립된 인격체라 사고하지 않기에 존중이라는 감정을 상실한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꼬박꼬박 난동을 피웠다. 기괴할 정도로 조용할 날이면 어린 나는 문을 열어 할머니의 생사를 확인하고는 했다. 그녀는 실제로도 안타까운 생을 보냈지만 자신이 너무도 잘 아는 덕에 도무지 애정을 줄 수 없었다. 그렇게 바다 근처에서 나고 자랐던 여자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당신이 계획했던 죽음은 아니었다. 늘 자신이 이 방 어딘가에 농약을 숨겼음을 선포했으므로. 나는 농약을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고 배웠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텃밭이 있음에 부럽다는 눈길을 자주 받는다. 사실 그 밭은 지긋지긋한 존재였다. 밭을 일구기 위해 항시 놓여있던 농약이 협박과 존재감을 표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었다. 가족 여섯 중 농약을 들이켠 사람만 둘이었다. 나는 여동생이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연락을 받고도 책을 폈다. 당연히 글자는 읽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활자를 억지로 눈에 담은 이유는 나를 위한 일을 하지 않으면 내 삶마저 잃어버릴 것 같은 확신이 들어서였다. 엄마는 그런 나를 의젓한 딸로 여겼다. 타지에서도 전화를 걸어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내비쳤다. 나는 내 기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녀의 일생을 알았기에 전화를 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믿었던 엄마마저 농약이라는 단어를 말했다. 나는 내 세상이 무너지는 참담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제 가족 중 그 도구를 언급하지 않은 이는 나와 아홉 살 터울의 막내였다. 막내에게는 좋은 가족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버텨왔지만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단 한 번도 죽겠다고 말하지 않은 이가 도리어 가장 빠르게 사라질 수 있음을 알리겠다고.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삶의 허무함과 성찰의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지구를 뜨기 전 하고 싶은 일은 해야 미련이 없을 터였다. 스물셋 정도면 가고 싶은 나라는 다녀올 수 있으리라. 나는 그렇게 스물셋 즈음으로 지구에서의 편도 표를 예약했다.


한 달이 지날 때마다 표를 미뤘다. 일차원적 집단에서 벗어나 생경한 사회를 만나며 너무도 좋은 이들을 알아버린 탓이었다. 거리를 두고 오롯이 나의 취향을 탐닉하니 지구에 관한 사랑까지 싹텄다. 복수를 위해 생을 끊기에는 미련이 발을 붙잡았다. 지구를 끊을 게 아니라 가족을 끊어내면 되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가족이란 이름만큼이나 당연해서 의문스러운 시선을 자주 받아낼 게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미워하는 존재보다 사랑하는 존재의 크기가 더욱 컸다. 그러나 이 모든 생각은 시간 앞에서 점점 부질없어졌다.


세월은 성질을 무뎌지게 만든다지만 내 가족에게는 해당하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이런 마음이었다. 나를 조금씩 갉아먹었던 존재들이 나약해지면 괜한 안쓰러움이 들까 봐, 숨기고 잠갔던 과거의 고통을 꺼내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까 봐. 우려했던 일은 몇 년 만에 벌어졌다. 수건걸이에 수건이 없다며 매를 들었던 그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방 안에 들어가 가만히 영화를 본다. 엄마는 그게 막내의 덕분이라고 했다. 혼을 내거나 매를 들 때마다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말조차 어려워지는 남동생의 증상에 관하여. 이번에도 나는 한 문장을 덧붙이려다 말았다.


글을 쓰는 인간은 고통스러운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훌륭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아직도 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이를 찾아 이렇게 말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여기 반례가 있습니다. 글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고통이 지워진다면 저는 기꺼이 응할 것입니다. 이름 모를 이에게 말하고 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고는 한다. 나는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해 많은 글을 쓰는 동안서도 가족에 관한 과거를 글감으로 써본 적 없었다. 이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처음 내보이는 이유는 드디어 그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나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더라도 괜찮을 정도로 과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평생 변하지 않으리라 예상했던 이들의 성격은 온화해졌지만, 여동생은 날이 갈수록 모든 면에서 극화됐다. 학교를 세 번 옮겼고 분노조절장애와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확정된 의사의 소견은 두 개였는데도 동생은 스스로 몇 가지의 병을 더 붙였다. 동생의 모습에서 할머니가 비쳤다. 둘은 자신이 얼마나 남들보다 비관적인지, 불행할 수밖에 없는지 얘기해야만 애정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그게 아님을 안다. 약을 먹고 온화해진 여동생이 내게 말했다. 자신은, 자신을 비정상으로 여기는 가족 때문에 나아지지 못한 것이라고. 언니가 내게 사랑을 더 주었으면 이 상황까지 오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계속 입을 다물어야 했다. 이번에는 다른 이유였다.


“아빠가 한 일 기억해? 나는 그때마다 죽고 싶었어.” 올여름, 응어리졌던 말이 망을 거치지 않고 입 밖으로 나왔다. 과거의 그의 모습이 보여 티끌만의 망설임도 없었다. 생전 처음 입이 생각을 뒤집고 빠르게 움직였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유언장에 쓰려고 담아뒀던 얘기들을 모조리 내뱉고 있었다.


한 번 나오기 시작한 진심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나는 줄줄 흐르는 극악한 말들을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말없이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날 수육을 삶았다. 젓가락으로 한 점을 집어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저었으나 몇 번의 권유 끝에 입을 작게 열었다. 아빠가 나가는 순간 뱉으려는 마음으로. 그는 방을 나갔고 나는 여물 씹듯 하염없이 고기를 되새김질했다.


사과마저도 미숙한 사람들이었다.


할머니는 살아생전 시어머니에게 몇십 년의 구박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아빠는 성장기 내내 형에게 자주 맞았다고 했다. 엄마는 그런 시어머니의 영향을 받았으며 여동생도 정제 능력 없이 그대로 물들었다. 나는 이들 모두를 이해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들을 그렇게 대했다 하더라도 악습을 잇는 건 분명 올바르지 않은 일이니까. 수육을 삼키며 나는 생각했다. 용서할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지금부터 증오하지는 않겠다고. 내게 있는 거름망을 떼어내 가끔 비춰주어야겠다고. 세월이란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강력하기에 실패할 수도 있겠으나, 그들에게 종속되지 않은 나의 지구에서 그들을 대하리라. 그렇다면 우리 모두 우리의 지구를 만든 후 행복하게 떠날 수 있겠지. 언젠가 다다를 목적지에서 차례로 마중을 나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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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가족의 야만을 오래도록 지켜봐온 한 사람으로서 가장 치열하게 고통스러웠던 것을 하나 말하자면 손바닥으로 내리치면 죽을 매우 징그러운 벌레를 죽이지도 못하고 몸 위를 기어다니게 내버려두었던 것이었습니다. 벌레에 대한 혐오감과 공포가 쌓여 그것이 체화될 때, 또한 그런 것들이 체화된 자신을 돌아볼 때 만큼 끔찍한 것도 없지요. 돌이켜보면 저는 그렇게 기어다니지 않기 위해 배우고 쓰고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제 몸에 벌레를 붙이게 내버려둔 것은 저도 아니었고, 그 벌레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붙어있게 한 외부의 압력 때문이었죠. 사실 가족이어서, 악의가 주변에 존재해서 라는 말들은 아무런 필요도 없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므로 나쁜 것은 싫습니다. 이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마찬가지로 나쁜 일도 누구나 다 저지를 수 있는 일이지요. 저는 그게 나한테도 적용된다는 생각을 꽤나 오랫동안 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부터는 저도 비록 가족들일지라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 별 수 없이 하나의 인간이었던 거죠. 그러나 뭐가 됐든 끔찍한 건 끔찍한거고, 거절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리스본 대지진이 있고나서 유럽인들은 신을 의심했다고 해요. 전능하고 인간을 위한 무한한 선의를 가진 신이 있는데 어째서 대재앙이 일어났냐는 의심이 시작된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러한 일이 있고나서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가치들을 의심할 수 있었습니다. 거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런 기억들을 결코 받아들이고 싶진 않지만 그런 의심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작가로서는 큰 축복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어쨌든 그래서 저를 괴롭게 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저의 공간과 주변을 행복한 것들로 꾸며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한결 기분이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물론 그 과정에서 포기해야할 것들은 꽤 있겠지만요. 이제 저와의 싸움이 남았지만 최소한 몸에 들러붙은 벌레들로부터 혐오감을 느끼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제가 느낀 바가 요아님의 글과 상통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때로 외적인 도덕이나 윤리, 책임감 따위가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다고 생각해요. 탈구조주의도 그런 맥락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지는데, 저는 이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탈출할 수 있는 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아님의 글도 그런 의미에서 쓰여지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한테 실망하지 않는 한, 외부에 휘둘려 실망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글 잘 읽었어요 :)

안녕하세요 피스톨님 정말 오랜만에 뵈어요 :) 긴 글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뭐가 됐든 끔찍한 건 끔찍한 거고, 거절은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나한테 실망하지 않는 한, 외부에 휘둘려 실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말씀해주신 한 구절 구절이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탈출할 수 있는 출구가 필요하다는 말은 정말 많이 공감해요. 더 이상은 우리, 다치지 않는 날만 펼쳐졌으면 좋겠어요. 아픈 글 읽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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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가족이 떠올랐습니다. 서로 부비기 위해 가까이 다가갈수록 찌를 수 밖에 없는... 그 와중에 가시를 세우지 않고도 포용할 수 있는 구성원이 하나 나왔으니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중이네요. 그동안 다른 이의 가시를 견뎌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토닥토닥

고슴도치 가족 ㅠㅠㅠ 맞습니다. 가시를 세우지 않고 포용할 수 있는 구성원이라뇨 .. 너무 큰 힘 얻고 갑니다. 아픈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dj-on-steem님께서도 행복만 가득하시기를 바라요. 너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