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잣불 켜는 밤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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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불 켜는 밤 @jjy

오늘이 정월 대보름입니다.
보름달을 보시며 소원을 빌으셨는지요.

오늘은 날이 맑아 전국 어느 곳에서나 달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달을 볼 만큼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저도 언제쯤 달이 뜨는지 수시로 밖을 내다봅니다.
한참을 정신없니 지내다 달이 제법 높이 떴을 때야 보았습니다.
없는 솜씨에 사진을 몇 장 찍으며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보름달이 떴는데 얼른 소원 빌어보라고 권했더니 배시시 웃기만 하고
그냥 지나칩니다. 어떤 아이는 소원 꼭 빌어야하나요?
빌면 이루어지나요? 하고 이것저것 물어 본다.

몇 해 전에만 해도 달맞이를 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는데
올 해는 달님, 달님 하며 아이들에게 달을 향하여 절을 하게 하는
가족들도 보이지 않고 불꽃놀이를 한다고 깡통을 돌려서 만드는
동그란 불꽃도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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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언제나 동네에서 제일 먼저 달을 보는 집에 큰 복이
내린다고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동산이나 언덕에 올라가서 달이
뜨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주신
다복 횃불을 켜고 절을 하고 떡을 구워먹었습니다.

동네 아저씨들은 달이 어느 능선에서 뜨는지, 달의 색깔이 진한지
묽은지를 보시고 올 해는 농사지을 물 즉 강우량이 어느 정도인가를
미리 점쳐두었습니다.

달구경도 하고 떡도 먹고 소원을 빌고 나면 오래 밖에 있다 보니
으슬으슬 한기가 스며들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대보름
일정이 모두 끝났지만 엄마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대보름 행사를
시작한다.

잣불을 켜는 일이었다.
실하고 상처 없는 잣으로 골라 바늘에 꿰어 불을 붙여
조그만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면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며
축원을 했다. 그 사이에 잣은 불꽃이 커지기도 하고
사그라들기도 하면서 끝까지 탄다. 그렇게 끝까지 타는 동안
엄마는 온갖 축복의 말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물론 종교적으로 보다 과학적으로 보나 실로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의식이었으나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절실해서
잣불 켜는 의식은 엄숙함을 넘어 숭고하기까지 했다.
우리 집 대보름날의 절정을 이루었다.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축원 하는 일이라
반드시 깊은 밤 인적이 끊어진 다음에 거룩한 의식이 진행 되었다.
식구가 많은 집이라 한 사람씩 축원을 하자면 오래 걸렸다. 나는
한 번도 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내 몫의 축복은
조금도 줄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고 깊은 밤
달은 점점 높은 하늘로 가고 엄마의 잣불은 밤을 잊고 팔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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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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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감사합니다.

여기서 보내요.못본 보름달을 ..... ......

제가 사진을 좀더 잘 찍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살짝...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대보름인걸 이 글 보고 알았습니다. 창가에가서 달을 찾아봐야겠어요.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창밖으로 보는 달도
정겹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할것 같습니다.고

달맞이하러 나갔다가 빌딩숲에 가려 달한자락 구경도 못 하고 왔어요. ㅠㅠ 이사를 고려해봐야겠어요.

어떡해요.
달이 안 보일 정도라니요.

같은 달인데 어릴 때 어른들과 함께 보던 그 달이 지금의 우리 어린 친구들에게는 같은 느낌으로 보여지지 않는 시대가 됐는가 봅니다.
저도 스마트폰의 수동 모드로 부들부들 떠는 손 진정시켜가며 한 장 찍었어요.
dbr.jpg

저는 그냥 자동으로
그래서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왔나봅니다.
감사합니다.

낮익은 대문사진에 소리없이
들어 왔다 갈려 했답니다!!
청평율님 대문사진 이미지와
거의 흡사하다 생각했는데..맞혔네요..!!
포팅 하나만 읽고 나가려다 3시간째
죽치고 있었답니다..ㅎ
어쩜 그리 제가 좋아하는 분께서도
여기 스팀잇에서 자작글을 쓰시는데..
이밤 너무나 감사하게
@jjy 님글에 홀릭당했네요!!
아~진짜 스팀잇은 오래오래 해야될것
같습니다.
전 미약한 일상글로 스팀잇에서 행복하게
존버하고 있답니다.
@jjy님 자주자주 보러 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달달한 꿀밤 되시구요.^^

감사합니다.
3시간씩이나 머물러 주시다니요.
저도 방문하겠습니다.

달사진 이쁘네요.

예쁘다기 보다
나름 성의를 보였습니다.
정월 대보름이라

달을 보고 빌어 본 소원이 올해는 이루어 질 것 같은 기분입니다 jjy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바도 모두 이루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품으신 뜻 모두 이루세요.

아~ 잣불이라는 지극정성 기도가 있었군요...
저 어렸을 때는 본 적이 없어서...

저도 다른 사람이 하는 건 본 적이 없어요.
우리 엄마가 대보름 밤이면
가족 한 사람마다 바늘에 잣을 꽂아 들고
정성껏 빌으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끝나면 또 한 사람 그렇게 해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