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에서의 시작]#2. 쌀, 그게 뭐라고.

in #kr6 years ago (edited)

쌀, 그게 뭐라고. 내 돈 주고 사려니까 엄청 아깝다. 예전엔 외식하고, 입맛 없다고 라면먹고, 배달음식 먹느라 집에 있는 쌀이 그리 귀한줄 몰랐다. 그도 그럴것이 일년에 한번 쌀 농사를 짓는 외할아버지가 5~10 가마니를 보내주셨다. 그래서 우리집엔 쌀이 항상 남아돌았다.

쌀이 너무 귀하다. 아니 쌀을 돈 주고 사먹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억울하다. 돈을 아낀다고 외식을 금하고 있는 상태라 쌀을 더 많이 소비하고 있다. 밥은 또 왜 이리 맛있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음식이라곤 김치찌개, 계란찜, 라면, 미역국이 전부다. 물론 인터넷 레시피의 도움을 받는 다면 못 할 음식은 없다. 그런데 음식같지 않은 내 음식도 현재로썬 너무 맛이 있다.

그리곤 어머니의 음식이 너무 그립다. 나에게 어머니의 음식 맛을 떠올려보라 한다면 초등학생 때의 맛일 것이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으로 인해 세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시간은 초등학생 때가 전부였다. 물론 그 시절엔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많이 먹지 않기도 했지만. 저녁이 되면 항상 어머니께 저녁 메뉴를 물어보곤 했다. 하루종일 내가 먹고 싶었던 메뉴와 그것이 일치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음식은 맛이 있었다. 전라도의 손맛일까? 외할머니 또한 음식을 잘하신다.

짠 음식을 좋아한다. 국물이 있는 음식이 좋다. 아버지의 입맛을 닮아서일까? 그래서 아버지의 높은 혈압도 닮게 되었다. 고혈압은 아니다 그 이전 단계랄까? 난 국이 없으면 밥을 먹질 못한다. 이 이야기를 하니 내가 아는 여자아이들은 “평생 결혼 못할 놈” 이라고 한다. 왜? 난 국이 좋을 뿐인데. 국 잘 끓이는 여자를 사랑하고 싶다.

다시 쌀 이야기로 돌아온다면 쌀 한가마니는 80kg이다. 요새 한가마니를 사서 먹는 사람이 드물것이다. 우리가 아는 한가마니는 40kg짜리로 사실상 반가마니에 불과하다. 외할아버지가 항상 보내주신 쌀도 반가마니 10~15개 였다. 택배 아저씨가 불쌍했다. 이렇게 무거운 쌀을 몇개씩이나 배달하는 모습이 힘겨워보였다. 하지만 진짜 불상한건 나였다. 대문에 쌓여있는 쌀 가마니를 3층 옥탑까지 옮겨놓는 것은 내 몫이였으니까. 얼마나 무거웠던지 4~5개를 옮기고 나서는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보기만해도 치가 떨리던 그 쌀가마니가 너무 그립다. 내가 사는 곳에 쌀 한가마니가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든든할 것 같다. 그것의 무게만큼이나. 오늘은 무슨 반찬을 해 먹을까 생각해본다. 싸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건 뭐지? 지금 냉장고에 남은 재료는? 에이 김치볶음밥이나 해먹자.

오징어볶음. 제육볶음. 김치찌개. 닭볶음탕. 육계장. 소고기뭇국. 된장찌개. 카레. 내가 좋아하는 어머니 음식들이다. 언젠간 다시 먹어볼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마트에서 쌀을 사왔다.

비닐봉투에 담긴 쌀 봉투가 왜 이리 가벼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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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네요.누군가 힘들게 농사지어서 줄때는 고마운줄 모르고 받아먹다가 이제 사먹으려면 비싸기도 비싸지만 산지 얼마 안된것 같은데 또 사야할때ㅋㅋ
많이 아쉽더라구요 감사한 생각도 들구요.
전엔 모르다가 나이들면서 감사할일들이 많이생기네요

혼자 힘으로 뭘 해보니 알게 되더라구요.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요새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