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의 무술 기행

in #kr5 years ago (edited)

그리스인 조르바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유도장이었다. 180cm가 넘는 키에 120kg는 거뜬히 나가보이는 덩치가 압도적인 인상을 풍겼다. 그는 자신을 그리스인이라 소개하였다. 유도 또한 그리스에서 꽤 오래 수련하였단다. 분명 그의 이름까지 들었으나 여느 외국인의 이름처럼 쉽게 외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를―실제로 그렇게 부른 적은 없지만―편의상 그리스인 조르바로 기억하였다.

   우리 도장에서 조르바는 어딘가 독특한 존재였다. 그는 무척이나 어색하고 엉성한 모양새로 유도를 하였는데, 정작 자신은 항상 자신감에 차 있었다. 기술 연습을 받아 주다보면 그가 기울이기나 몸쓰기 같은 유도의 기본적인 이론 조차 모름을 느낄 수 있었지만, 관원들 중에 누구도 선뜻 그를 교정해 주려 나서지는 못했다. 혹시 함부로 지적하였다가 조르바의 스승을 욕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사람들은 그가 패배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물어오길 기대할 따름이었다.

   하나, 그의 어설픈 유도는 그의 진짜 독특함에 비하면 그다지 이야기할 만한 거리가 못되었다. 체육관을 가득 메우는 그의 존재감은 운동 시간이 끝나고 나서 진정으로 발휘되었다. 그는 사람들이 비워둔 공간에 우두커니 서서 호흡을 고르는가 하면 돌연 가라테 가타(태권도로 치면 품새와 같다)를 진행하길 좋아했다. 상상해보라, 거구의 외국인이 도장 한 가운데에서 진지하게 품새를 수행하는 모습을. 관원들은 그 모습을 약간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 없기도 한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조르바는 본인이 오키나와에서 전통 가라테를 배웠다고 자랑스레 설명했다. 오키나와는 근대에 들어서야 완전히 일본에 병합된 지역으로 일본 가라테의 기원이 되는 곳이었다.

조르바의 본심


   사실 나는 그가 우리나라에 지내는 동안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말하자면 우리 사이는 나쁜 쪽에 가까웠다. 어느날 술자리에서 그와 벌인 한참 동안의 설전 탓이었다. 그날의 이야기는 살짝 취기가 오른 그가 속에 담았던 본심을 꺼내며 시작되었다.

유도는 훌륭한 스포츠일 뿐 무술은 아니야. 내가 배운 오키나와 가라테야말로 진짜 무술이라 할 수 있어.

   나는 그의 말에 잠시 벙지긴 했으나, 이내 이로써 그의 모든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에게 유도는 일종의 놀이와 같았고 진지한 수련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보충했다.

유도는 위험한 기술들을 전부 금지했어. 치명적인 급소를 노리지도 않지. 하지만 내가 배운 가라테는 정말 위험해.

   그러나 논쟁이라면 나도 어디가서 빼는 성격이 아니었다.

- 조르바, 너의 가라테가 급소를 가격할 수 있다고 했는데, 한번이라도 그 급소를 실제로 때려 본 적 있어? 내 말은 보호구를 하고서라도 스파링을 해 본 적 있느냐는 거야.

나는 가타를 수련하고 격파로 단련했어.

- 말 돌리지 말고. 움직이는 사람이랑 정말 겨뤄본 적 있냐고. 아니면 너와 함께 운동했던 사람 중에 해 본 사람은 있어?

가라테의 기술은 너무나도 위험해서 사람을 놓고 연습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해야 해.

- 그런데 조르바, 이상하지 않아? 연습할 수도 없고 되는지 확인해 본 적도 기술을 어떻게 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거야? 너도 알잖아. 기술이란건 홀로 따라해 본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수많은 스파링을 통해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면서 얻어가는거지. 지금의 너만 보더라도 유도 좀 했다면서 지금까지 제대로 걸 수 있는 기술은 하나도 없잖아.

   내 말에 뼈가 있었던 까닭에 그는 다소 빈정이 상한 듯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유튜브에 올라온 오키나와 도장의 수련 모습으로 항변하려 들었으나, 나는 다시 완고히 말했다.

- 이런 품새나 격파는 태권도에서도 많이 해. 시합이나 스파링 영상을 보여줘.

너는 누구 하나가 크게 다쳐야 직성이 풀리냐? 이건 진짜 위험한 거라고!

   그는 결국 논지와는 상관없는 말을 꺼내며 나에게 화를 내고야 말았다.

무술의 발전


   추측건대 아마 그는 과거를 향한 강한 신비주의를 가졌던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치 전설의 다마스쿠스 강이 현대의 제철기술을 뛰어넘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현실은 우리집 부엌칼보다 못한 수준이다). 과거의 기준과 현대의 기준은 분명히 달라졌고 기술은 발전하였다. 조르바는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사실 자유롭고 안전한 스파링은 무술의 역사에서 과거와 현대를 가르는 분수령이었다. 조르바가 말한 바처럼 무술이 스포츠로 변질되는 기점이 아니라, 전투력 측면에서 혁신을 이룬 도약이었다. 안전함을 추구하니 강해졌다는 말은 언뜻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이미 일어난 역사가 이를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1882년 창시된 가노 지고로의 유도만 하더라도―조르바의 생각과 다르게―기존의 전통 무술들과 겨루어 승리를 거둠으로써 빠르게 유명해진 경우다. 더욱이 그들은 일본 내 무술들 뿐 아니라 외국의 레슬러나 복서들과 싸워서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보여주며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이 강했던 이유가 바로 안전한 자유 연습이었다. 가노 지고로는 품새에 의존한 기존의 수련법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고, 안전한 자유 연습을 강조하였다. 물론 당시에도 위험한 기술을 금지하는 가노의 조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는 자유 연습 없이는 강해질 수 없고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한 자유 연습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1925년 문을 연 그레이시 주짓수 역시 유희인 양 부드럽고 안전한 스파링으로써 브라질을 제패했다. 그들이 세상에 나온지 100년 가까이 되었지만 현재도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기술은 나날이 정교해지고 있다. 혹자는 종종 규칙이 있는 스포츠는 실전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하지만, 그레이시 가문의 사례는 훌륭한 반례가 된다. 그들의 명성은 규칙이 없는 발레투도 경기에서도 유효하였고, 그 유명한 1993년 첫 UFC 대회도 눈찌르기나 고환 가격에 전혀 제한이 없었다.

   우리가 잘 아는 복싱의 발전도 이 논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보는 현란한 복싱은 20세기에 들어 발전한 형태이며, 과거 안전장비가 없어 자유로운 스파링을 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단순히 누가 더 터프한 남자인가를 겨루는 경기일 뿐이었다. 요즘에는 실전성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태권도 조차도 적극적으로 스파링 체계를 개발한 결과, 당시로서 적절한 스파링 체계가 없던 다른 무술들을 압도했던 이력이 있다. 지금와서야 발전된 현대 무술끼리 비교하여 약해 보일 따름이다.

   무술의 역사에서 자유롭고 안전한 스파링은 기술 발전을 위한 실험장이자 시험장과 같았다. 안전하기 때문에 기존의 기술과 더불어 새로운 기술을 실험해 볼 수 있었고, 자유롭기 때문에 기술의 효과를 시험하고 가다듬을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면, 수련자들이 시합 규칙에 지나치게 과적합(overfitting)되는 현상이지만, 이 역시 발전을 경험하며 나타난 부작용일 뿐 과거 속에 정체되었다면 나타나지도 않았을 문제이다. 요컨대 무술은 스파링을 통해 시도와 검증을 거쳐 전통에서 현대로 한걸음 한걸음 발전해 나간 것이다.

사고의 퇴행


   나는 이러한 배경에서 조르바의 신비주의가 일종의 퇴행처럼 느껴졌다. 21세기에 들어선지도 꽤 되었지만,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에 회부한 17세기 교황청을 보는 답답함이었다. 특히 갈릴레오가 실험적 검증을 추구함으로써 현대 과학의 문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는 점이 묘하게 닮아 더욱 그러하였다. 가령, 교황청이 신의 권능에 따라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믿을 형성했다면, 조르바는 전통의 권위에 따라 그의 가라테가 실전적인 무술이라 믿었고, 교황청이 실험적 증거를 통한 갈릴레오의 검증을 불경한 것으로 취급하였다면, 조르바는 스파링을 통한 현대 무술의 검증을 위험한 것으로 취급하여 검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아울러 조르바는 흔한 전근대식 논리로 검증의 오류 가능성을 지적했는데, ‘그 실험이 틀릴 수 있다. 실전은 규칙이 없고 칼도 쓸 수 있다. 시합에서 연마된 기술이 먹힐지 알 수 없다’라는 식이었다. 나는 당최 현대 무술의 오류 가능성과 오키나와 가라테의 실전성이 어떤 논리적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현대 무술이 가진 기술 중에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있다 손하여, 전통 기술의 파괴력이 증가라도 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의 말을 찰떡처럼 이해한다쳐도, 그가 주장하는 현대 기술의 오류라든가 전통 기술의 효과는 주장하는 당사자인 그가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규칙이 없을 때 왜 현대 무술은 힘을 못쓰는가, 칼을 든 상대로 왜 전통 무술이 효과를 발휘하는가 같은 주장은 주장하는 그에게 근거를 댈 책임이 있다. 예컨대, 눈에 비해 수십배는 더 큰 안면을 때리는 데에도 엄청난 노력을 들이는 복서보다, 한번도 실제로 눈을 찔러본 적이 없는 전통 무술가가 상대의 눈을 더 잘 찌를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은 조르바가 입증해야 한는 말이다. 이미 수도 없이 검증대에 올라 합리적인 수준에서 인정된 사실을, 본인은 검증대에 서지도 않고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결코 온당한 발상이 아니다.

   그런데, 막상 이제와 생각보니 조르바의 사고 방식이 꼭 퇴행적이라고 표현할 수만을 없을 것 같다. 이렇게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많은 것을 증명해 왔음에도, ‘실전 무술’을 표방하는 무술은 끊임 없이 등장하고, ‘위험해서 스파링은 불가능하다’는 변명이 아직도 쓸만하게 먹히면서 장사가 되니 말이다. 애초에 인간의 본성은 17세기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고 사고 구조 또한 문명의 발전을 따라오지 못했을 따름인 것이다. 나 역시도 무술에 좀 더 관심이 많았을 뿐 다른 분야에서 퇴행적이겠구나 생각이 미치니 씁쓸해진다.

P.S. 조르바야, 잘 지내니? 너무 정곡을 찔러 미안하긴 한데 어쨌든 이거는 내말이 맞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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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줄ㅋㅋ

Karate를 가라테로 표기하는군요.

정말 제 말이 맞거든요ㅋㅋㅋㅋ 제가 나름 이 분야 덕후인지라ㅎㅎ

말문이 막힌 조르바가 나중에는 프린스님에게 나랑 한번 붙자! 몸소 증명해주마! 라는 전개로 흐를줄 알았습니다..ㅎㅎㅎ

사실 그말은 제가 했답니다. 내가 상대 해주겠다고. 느껴보라고ㅋㅋㅋㅋㅋㅋ

과거의 무술에 대한 환상이 있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최근에는 크라브 마가와 같은 군용무술에 환상을 품는 사람들도 많구요.

크라브 마가는 할말이 많지만 하지 않는걸로ㅎㅎㅎ주변에 장사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찝어서 이름을 거론하기가 항상 조심스럽네요

너무 호전적입니다. 저는 논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집요하게 파고들면 트라우마가 생기지요.

어버버버버....xdxoigrdkfklds;kf

조르바도 저와 같은 과인듯 하내요. ㅋㅋ
왕자님께서는 쌈닭기질이 강하세요. ㅎㅎ

사실 체술로 하는 모든 술기는 모두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그에 따라변천하는 것이기때문에 무엇이 최고라고 말할수는 없지요. 동감합니다. 조르바는 왕자님께 조르기를 당했나봅니다. ㅎㅎ

저는 개인적으로 자뻑감으로 상대를 존중하지않는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개무시하지요. 겉으로는 아닌척하고요. (표내었다가 마자죽을지도 모른다는 후덜덜....)

조르바 저에게 조르기 많이 당하고 갔습니다ㅋㅋㅋ 제가 쌈닭기질이 좀 있지요ㅎㅎ

조르바 : 그만... 숨막혀... 조르지 마 봐

ㅋㅋㅋㅋㅋㅋㅋ이런 드립력

조르바는 오키나와데를 배웠다고 하는 거군요. 그 오키나와 가라데도 현대화 되기 전에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저도 예전엔 고대 무술에 대한 환상 같은 거 있었는데 어차피 무술이란게 힘쓰고 몸쓰고 손발쓰는데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더군요.

네. 오히려 맨손무술은 과거에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어서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무기술을 연습하고 연구하는게 훨씬 합리적인 시절이었죠.

맨몸격투는 원래 병장기 전투술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알고있는데 비슷한 논지의 말인것 같군요.
근데 다르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 듯... 권법이 먼저 발전했고 병장기술은 나중에 발달한 것으로

물론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나 씨름의 형태로 몸을 단련하는 전투술은 존재했습니다만, 제대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굉장히 나중이고 근대에 들어서야 지금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화포의 발달로 무기술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자기 단련용 또는 호신용으로서 맨몸격투술이 발전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중국 권법이나 일본 주짓수 모두 전쟁을 위해 발전하지 않았고, 유럽의 복싱이나 레슬링 또한 자본주의와 맞물려 엔터테이먼트 사업의 일종으로 발전한 것이라 애초에 전쟁과는 거리가 멉니다. 물론 이들 모두 싸움의 기술인지라 동네 술집에서 1 대 1은 기가 막히지만, 어쨌든 무기를 든 다수 대 다수의 전투인 전쟁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죠. 유명한 예로 명나라 초기 왜구가 쳐들어 왔을때, 몽골족과 전쟁을 치르던 중이라 병력이 부족해서 무술한다는 사람들 모아서 부대를 편성한 적이 있는데, 아주 당나라 군대였다고 합니다ㅋㅋㅋ 음.. 말하려면 끝이 없어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제 덕력이 너무 탄로나는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