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위기-자본주의는 붕괴될 것인가-자본주의 매커니즘 1부-Marx Karl

in #marx6 years ago (edited)

         

쿠바가 사랑하는 남자, 쿠바의 독립을 염원했던 혁명가이자 문학가인 호세 마르티(Jose Marti, 1853~1895)는 "특별히 게으르지도 않고 성격이 고약한것도 아닌데 가난한 사람이 있다면 그곳은 불의가 있는곳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싶을때 공통적으로 결정장애를 겪는다. 

 '비록 쥐꼬리만한 월급이지만 이것 마저도 없으면...' 

회사를 그만두면 당장 그 달의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 할배가 4차 산업을 선언한지도 2년이 넘어간다. 기존의 경제질서, 산업성격이 명확히 다른곳으로 이행될 때 노동자는 새로운 산업의 구성원으로서 이질감이 없으려면 그에 어울리는 자질과 능력등을 미리 학습해 주체적인 가치관을 정립해야한다. 개개인은 스스로 학습하면서 이전의 산업질서의 잘못과 폐단을 수정하고 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폭넓게 수용할 수 있도록 항구적인 번영의 지평위에 이를 올려놔야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사회는 노동자들에게 이런 시간여유를 주지 않는다. 거대한 경제시스템을 조금이라도 의심하거나 잠시라도 이탈할 수 없도록 최저생계비라는 비열한 방식을 통해 계속적인 노동을 강제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동료, 친구들, 특히 우리 부모님만 보더라도 게으르거나 성격이 고약하지 않은데 대부분 가난하고 항상 자본의 사슬에 묶여 있다. 그렇다면 호세 마르티가 말한것처럼 이 사회에 불의가 있는것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만큼 알고 있고 그것이 가지는 한계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일찍이 여기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해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카를 마르크스(Marx Karl, 1818~1883)다. 이 사람때문에 인류가 둘로 쪼개졌을만큼 그의 사상과 글은 영향력이 실로 컷으니, 좋든 싫든 그의 말을 한번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것 같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케인즈에게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어보도록 2번이나 권해서, 마지못해 자본론을 읽었던 케인즈는 현탁한 쓰레기(turbid rubbish) 같은 빨간 책이라고 하며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평했다.  


저는 두 사람 중에 엥겔스를 더 좋아합니다. 그들이 일정한 논리 전개 방식과 상대의 논의를 무시하는 비열한 문체를 발명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이 이 둘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그들이 경제학의 수수께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했다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그에 대해서는 달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자본론을 읽어봤던 사람들은 아마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마르크스가 직접 출간한것은 자본론 1권이며, 2, 3권은 그의 사후, 친한 동료였던 엥겔스가 그의 유고를 정리하여 출간한것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글의 전개와 문체가 형식에 얽매이기 싫어했던 자유롭고 방탕했던 그의 모습과 무척 닮아서 인지도 모르겠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 대해 뭐라고 얘기했는지 살펴보기 전에 한번 그의 삶을 먼저 들여다보자.

 마르크스는 20세기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무명에 가까웠다. 친한 친구 엥겔스만이 그의 주위를 멤돌뿐이었다.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태어났다. 당시의 프로이센(지금의 독일) 라인란트 트리어지역에서 부르주아 집안의 일곱 남매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하인리히 마르크스는 변호사였으며 포도밭도 소유할 정도로 당시에는 부르주아 계층에 속해있었다. 마르크스에게는 형이 있었는데 4살에 죽게되어 마르크스가 장남이 되었다. 형제들사이에서 권력의 정점에 오른 마르크스는 그때부터 여동생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는데, 여동생들의 등을 강제로 타고 트리어 거리를 달리게 하거나, 그가 만든 더러운 케익으로 케익 빨리 먹기 대회에 참가시키는등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보살피는 책임감 있는 장남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여동생들은 이런 마르크스를 좋아해 많이 따랐다고 하는데 아마도 워낙에 똑똑하고 아는것이 많았던 그의 입이 동생들을 구워 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르크스가 유년기를 보낼 무렵 이웃에 살던 폰 베스트팔렌 남작(후에 그의 딸 예니와 마르크스는 결혼하게 된다)은 마르크스에게 셰익스피어, 호머등 낭만주의자들의 얘기를 들려주었고, 후에 마르크스가 가장 혐오했던 공상적 사회주의를 가장 먼저 소개해주었다.  이와는 반대로 아버지인 하인리히는 뉴턴, 로크, 라이프니츠등을 소개하며 영국의 경험주의가 가미된 프랑스 합리주의를 가르쳤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정말 중요햇던 유년시절에 마르크스는 이 두 스승을 통해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가지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 본(Bonn)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한 그는 본격적으로 술독에 빠지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리다 대학 당국에 감금되는 조치를 당하며 의도하지 않게 법률 현장 실습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런 아들의 일탈행위를 참다못해 아버지 하인리히는 본대학교보다 조용한 베를린 대학교로 아들을 강제로 진학시킨다. 베를린 대학교로 옮긴 마르크스는 그의 인생에서 일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청년 헤겔파에 들어간것이다.  

관념론 철학의 대부인 헤겔은 모든 철학과 학생들의 공공의 적이다. 그의 저작인 '정신현상학'을 읽으면 정신이 이상해지는 현상을 겪게된다. 헤겔은 당시 서로 분리, 대립되었던 피히테, 버클리등의 주관적 관념론과 셸링의 객관적 관념론을 통일, 집대성하여 관념론 철학을 완성시켰던 형이상학자이다. 머리가 아파오지만 조금만 관념론을 살펴보자. 

관념론은 우리의 생각이 물질에 우선한다는 이론이다. 즉 생각이 있어야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가 쓰는 필기구, 컴퓨터, TV등 인간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모든 문명의 이기는 누군가의 대가리속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그럼 주관적 관념론과 객관적 관념론은 무엇인가? 주관적 관념론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들, 즉 물질적인 것들은 인간의 인식작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눈앞에 볼펜이 있는데, 볼펜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주관적인 인식작용의 결과라는 것이다. 즉 볼펜이 실제로 눈앞에 존재하여도 인간의 인식작용이 없다면  볼펜이 존재하지 않는것으로 치부(?)된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이중슬릿실험을 통해 인간의 주관적인 의식작용의 결과로 물질들이 배열된다고 증명된것도 이와 얼추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쉽게 말해 인간이 보지 않을 때는  모든 물질들이 용광로처럼 카오틱(chaotic)하게 존재하다가 인간이 관찰하는 순간 일정한 규칙성을 가지고 배열된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객관적 관념론은 사물은 개개인의 주관적인 인식작용의 결과가 아니라 현실세계를 초개인적인 이데아 및 본원적인 우주적정신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개개인의 주관적인 인식에 따라 이 세상을 인식하게 되면 서로 다르게 보여야 하는데 우리는 똑같이 인식한다. 그러니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이상적인 세계(플라톤은 이를 이데아라고 함)가 있고 그 이상적인 세계의 짝퉁, 그림자에 불과한 현실세계를 이 이데아를 통해 인식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똑같이 인식한다는 것이다. 암튼 이 둘을 하나로 통일시켰으니 헤겔은 존나 위대하다. 근데 좀 쉽게 적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마르크스 얘기로 돌아가면 청년 헤겔파에 들어간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Feuerbach,  1804~ 1872) 에게 헤겔 철학의 비판적 평가와 급진적 휴머니즘을 영향받아 유물론자로 변신하게 된다. 

                

헤겔의 추종자가 헤겔의 적대자가 된것이다. 물론 헤겔의 모든것을 부정한것은 아니였다. 헤겔의 주요 방법론이었던 변증법(Dialectic)을 수용하며 포이어바흐의 유물론과 헤겔의 변증법을 결합하여 변증법적 유물론(Dialectical Materialism)을 만들게 된 것이다. 마르크스 이론의 사상적 배경인 변증법적 유물론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관념론에서 현실세계는 인간의 주관적인 인식의 결과이며, 변화무쌍한 인간의 의식작용이 현실세계에 투사됨으로서 끊임없이 우리의 세계 역시 변화하게 된다고 한다. 즉 인간이 만들어가는 역사란 사실 그때 그때 지구에 존재하던 인류의 의식이 물질세계를 변화시켜 형성되는 지구적 스캔들의 동태적인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포이어바흐는 이런 관념보다 물질의 힘을 중요시했다. 물질이 관념에 선행해서 존재하고 물질에 의해 우리의 생각이 규정된다는 것이다. 즉 지구에 태어난 이상 지구를 넘어 우리의 생각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3차원 존재인 인간이 4, 5, 6... 11차원을 상상하거나 이를 규정할 수 없듯이 말이다. 헤겔은 신에 대한 믿음이 역사를 만들어 냈다면, 포이어바흐는  필요에 의해 신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인간이 가진 여러가지 속성을 투사해 신을 만들어 낸 것이니 유치한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마르크스는 비록 반헤겔주의자가 되었지만 그의 방법론이었던 변증법(테제, 반테제, 종합테제)을 이용해 물질에 기초한 인간의식이 다시 물질에 영향을 주며 이 세계가 연속적으로 변해간다고 했다.  마르크스의 말을 들어보자.


종교, 윤리, 민족주의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창밖을 내다봐라. 인간이 한갓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발버둥치고 있는지 똑똑히 보라. 인간 없는 역사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빵 없이 인간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최초의 역사적 행위는 이런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럼 마르크스는 자신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의해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변화된다고 했을까? 그의 말에따라 물질이 선행해서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준다고 했으니, 물질이 변화되면 인간의 정신, 역사가 변화 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물질을 생산제관계로 파악했다. 고대의 노예제에서, 중세의 봉건제, 근대의 자본주의로 생산관계가 변화됨에 따라 인류역사는 변화되었고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자본주의는 그것이 내포한 모순으로 붕괴되고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사회주의가 도래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마르크스가 무신론적 급진 자유주의자가 되어 갈  무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당시 20살이었던 마르크스는 평생 자신을 뒷바라지를 했던 아버지의 죽음을 애통히 여기고, 그동안 질질 끌었던 학업을 서둘러 마칠것을 다짐한다. 희랍 철학을 주제로 학위 논문을 쓴 그는 당시 학위 제조 공장으로 유명한 예나대학에 제출해 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듬해 마르크스는 급진적 반정부 신문인 라인신문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하고 같은해 10월에 편집장이 된다. 그는 반정부적인 기사를 써서 프로이센 정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히게 되는데 급기야 신문사를 닫던지 마르크스를 내보내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최후 통첩을 받고 제 발로 신문사를 나오게 된다(후에 신문사도 문을 닫는다).  신문사를 나오기전 프로이센 귀족 가문 출신으로 폰 베스트팔렌 남작의 딸인 예니와 결혼하게 되는데, 신문사를 나오면서 둘은 파리로 이주하고 마르크스는 본격적으로 사회주의와 경제학을 연구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슬하에 4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첫째 제니, 둘째 에드거, 셋째 프란체스카, 넷째 엘리나이며, 엘리나를 제외하고 마르크스 생전에 모두 폐렴, 기관지염, 결핵으로 사망하게 된다. 마르크스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던건 돈이 없어 이들을 묻을 관하나 마련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 좀처럼 자기탓을 하지않던 마르크스도 자식들의 죽음앞에 자신을 비난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진정 훌륭항 사람은 자연 그리고 세상과 많은 관계를 맺고 있고, 많은 관심 대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손실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훌륭한 사람 축에 끼지 못하는가 보다. 자식들의 죽음으로 내 가슴과 머리는 산산이 부서져 내렸으며, 아직까지도 자식들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감하기전에 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 경제학 철학 초고, 공산당선언, 자본론등 방대한 집필활동을 하게된다. 마르크스가 싫든 좋든 그가 인류에게 던진 화두와 족적은 유물론자 답게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그가 남긴 유산의 해석은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며, 그에 대한 평가 역시 엇갈린다. 때로는 지상의 유토피아라는 허황된 열망으로 선량한 노동자들을 매혹시켜 공산당 복음을 전파한다는 구실속에 자신들의 권력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서 사용한 국가주의자들의 등장시키기도 했지만, 현대 자본주의 한계를 극복시켜줄 수 있는 대안으로 그가 가진 이념은 현대사회에서 이미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모든것들을 파생시킨 그 본질은 무엇이였을까? 그가 어지럽게 펼처놓은 이념의 가시넝쿨을 헤집고 들어가서 그 안에 소중히 보관되있던 그의 생각과 만나면 오만하고 자기잘난맛에 살던 마르크스가 부끄러워하며 '나는 약자를 보살펴주고 싶어'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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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만드신 계정인가요 아니면 스팀잇을 처음 가입하신 분이신가요? kr-join 태그를 써서 자기 소개를 먼저 해주시면 더 많은 사람들이 @shine.window님의 글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팀잇 시작한지 일주일 정도 지났는데 지금 자기 소개를 해도 괜찮을까요? 당시에 어떻게 시작하는지도 모르고 부랴부랴 글 올리기 바빴네요

네 그러는분들 많습니다. 저는 가입되는 동안 눈팅을 좀 해서 시작하자마자 가입인사를 하긴했는데, kr-join 태그가 사용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원래 뷰(view)수도 보였었다가 어느날 없어져서 지금은 알 수 없지만, @shine.window님이 계속 쓰시는 글은 지금보다 더 보팅 받으셔도 좋은 글입니다. 지금 너무 @shine.window님 글의 노출이 적은 듯합니다.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늦었지만 자기소개글을 올려봐야겠네요 ^^ 앞으로 좋은글 많이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부계정도 운영을 시작했는데, 제가 가장 처음 올린 글처럼 kr-join 태그를 다시면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줍니다.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