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뢰군 연혁) 11, 소련군 대표단의 활동

in #sct5 years ago

소련군 대표단의활동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38-40)

소련은 1949년 3월 26일부로 소련군대가 만주로부터 철수하였다고 5월 22일 발표

1948년 6월 7일 소련은 북조선 주둔 소련군을 감소시킴과 동시에 북조선 주둔 사령관 “끄로뜨코프”중장을 귀환시기고 새로이 마르클로브(Marklov)소장이 지휘하는 소수 부대만 잔류하게 되었다고 발표

1948년 12월 25일에는 잔류부대도 완전히 철수했다고 선언

그러나 대다수 소련군은 인민군의 고문이라는 명목하게 잔류하고 있었으며 장비의 대부분을 북한군에게 이양

북한 민족보위상 최용건이 자랑스럽게 말한바와 같이 소련이 성의 넘치는 원조로 조직정비된 북한군의 병력은 보병 3개여단, 1개 동립혼성여단, 38경비 2개여단, 조만 국경 경비대, 전차연대, 비행연대로 구성

북한 주둔 소련군의 철수화 함께 1948년 12월말 모스크바를 떠난 소련군 대표단 대표단 일행이 1949년 1월에 평양에 도착

일행은 크라노프(Kranov), 챠토코프(Chotokov), 가라제프(Garazev), 챠자로프(Chazarov) 및 북한 주재 소련대사(Stikov)를 수반으로 대령 12명 중령 20명으로 구성

이들 대부분은 장갑전술의 전문가였으며, 챠자로프는 수륙양용 부대의 전문가였으며, 정보전문가들도 있었음.

북한군의 조직을 위한 계획은 1948년 12월 중순 모스크바에서 이미 토의되었음

소련 무력상 부르가닌을 의장으로 하는 토의에서 소련 공산당 볼세비미 정치국원 말렌코프(Malenkov) 환시리에피스키(?)(Hansilvsky) 장군, 코바이프(Kovaiv) 장군, 해군 육전대 참모과장(Gaovov) 그 밖에 중공과 북한 괴뢰집단의 대표 및 적군기술 부대들의 대표들이 참석

북한군 건설의 기본방침은 주로 부르가닌(Bruganin)이 연구. 그는 기계화에 중점을 두고 최신식 장갑차를 배치할 것을 강력 주장했다. 그러나 석유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아 중간 중자 및 무거울 중자급의 화포가 기계화되지 못했다,

이 계획에 의하면 북한군의 훈련은 18개월이내에 완료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고한다.

소련 군사 대표단은 이런 명령을 받고 1949년 3월부터 북한군 훈련에 참가했다.

<괴뢰군 연혁>은 소련군사대표단의 활동과 그 배경을 비교적 자세하게 정리했다. 아쉬운 것은 근거와 참고자료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48년 12월 북한군 강화를 위한 회의가 소련 무력상 주관하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직 다른 글에서 소련 무력상 주관하에 그런 계획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교차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이 회의에 중공의 대표들이 참가했다는 기술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한국전쟁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따지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대목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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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이 전쟁의 주도적 역할을 하고있네요

That wasn't very nice. That was a lot of Steem to me. And as if it isn't enough with the HF. Explain to me how this isn't dysto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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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his note is all day's work of my study on this the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