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릿 : Activating Evolution] 08. 어쩌다 마주친

in #stimcity4 years ago (edited)





우연히 행복해지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



그런 적이 있을 겁니다. 서점에 들렀다 눈길을 끄는 어떤 책을 만난 경험 말입니다. 횡단보도 앞 레코드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마음을 사로잡혀 버린 경험 말입니다. 인간의 소통은 눈과 귀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마음을 끄는 무엇, 마침 생각하고 있던 그것을 우리는 어디선가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인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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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있는 책을, 인연이 있는 음악을, 인연이 있는 그림을 어디선가 만나고 보게 됩니다.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나는 경험은 반드시 누구의 추천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글, 우리가 들어야 할 음악을 운명은 여러 곳에 흩뿌려 놓았습니다. 그중 서점, 레코드점 같은 곳은 그러한 운명들이 조우하는 멋진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그냥 들렀던 겁니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심심해서, 지나가는 길에 우리는 서점에, 레코드 가게에 들렀습니다. 여러 콘텐츠들이 놓여져 있고 눈길이 지나가다 무엇에 꽂힙니다. 그것은 꼭 해당 서점에서 추천하고 있는 무엇만이 아닙니다. 서가 어딘가에 무표정하게 꽂혀 있던 그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필 그때 그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는 운명의 시간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호기심의 세계로 이끕니다. 생전 처음 보는 주제였음에도 마음이 끌리고 눈에 꽂혀 보기 시작한 그것으로 인해 나는 미지(未知)와 조우하게 됩니다. 그것은 때로 나의 진로를 결정하기도 하고 인연의 짝을 만나게 해 주기도 합니다. 어, 그 책 읽으셨어요? 어, 그 노래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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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연한 만남 말이죠. 우리는 그러나 우연히 행복해질 기회를 상실당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유통환경의 한계 때문에 말입니다.



보여주는 것만 보고 들려주는 것만 들어



오프라인 유통환경에 비해 온라인의 유통환경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무한대에 가까운 접근성에 비해 보여지는 것은 화면 하나가 전부입니다. 모니터에 그려지는 하나의 화면. 그것이 우리가 접하는 콘텐츠의 전부입니다. 스크롤을 내리고 페이지를 넘겨보아도 콘텐츠의 접촉면은 언제나 하나의 화면으로 제한됩니다. 몸으로부터 분리된 텍스트는 우리에게 말을 거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몸이 우리에게 뿜어대던 무언의 언어가 제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뭐라고 딱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느껴지는 그것, 느낌적인 느낌 말입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손에 집어 들게 하는 그것 말입니다. 느껴지는 묵직함과 감촉, 나의 취향을 자극하는 그 질감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겁니다. 그러나 온라인의 세계에서는 오로지 텍스트로만, 그리고 한없이 부족한 썸네일 이미지로만 그것과 소통해야 합니다.



‘뭐? 뭐라고? 잘 안 들린다고!!’



뭐라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은 내용이 중요하다지만, 책은 내용을 넘어서는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손발, 몸뚱이가 잘린 채, 입만 살아서 뭐라뭐라 하는 기형적인 소통에 때로는 섬뜩하기도 합니다. 물성이 제거된 메일과 댓글이 자꾸 오해를 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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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자꾸 내밉니다. 아.. 그게 아닌데.. 고개를 저어도 팝업창을 팡팡 띄우며 남들도 다 읽었다고, 싸다고, 할인해줄 테니 너도 보라며 자꾸 눈앞에 들이댑니다. 진짜 뭔가 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말입니다. 뭔가가, 마음을 잡아끄는 뭔가가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 건 어디 저 찾기도 힘든 다음 페이지, 그다음 페이지 맨 뒷 쪽 어딘가에 숨겨 놓고, 지들이 원하는 것만 자꾸 들이댑니다.



콘텐츠는 파일이 아니야



온라인의 분류 방식은 사실 매우 불편합니다. 자꾸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모든 것이 서랍 속에 들어있고 원하는 것들을 찾으려면 언제나 서랍과 서랍, 그 서랍의 서랍 속을 뒤져야 합니다. 게다가 텍스트 파일명으로만 분류되어 있는 그것을 정확하게 찾아내기란 매우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무한한 데이터 보관 능력에 비해 데이터 검색의 과정은 복잡하고 좀처럼 익숙해지지를 않습니다. 검색기능을 사용하라구요? ctrl+F를 누르고 파일명을 치라구요? 파일명이 생각나지 않는데 뭘 검색하란 말입니까? 언제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존재는 이름으로만 표현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무얼 찾는 데 이름으로만 찾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표지의 색깔과 문구, 판형의 크기와 질감 등등으로 기억되는 것이 더 많습니다. 게다가 오래된 그것은, 자주 찾아보지 않는 그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의 성함처럼 실루엣으로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김.. 무슨 선생님이었는데.. 파란 치마가 잘 어울리셨는데.. 키가 작으셨었는데.. 조각으로만 떠오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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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량에 따라 도서관 하나를 넣어 다닐 수도 있지만, 실제로 원하는 그것을 찾아 들어가는 데는 익숙한 책장 서가에서 책 한 권 빼 오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화면크기는 제한되어 있고, 모니터와 스마트폰 화면이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와 텍스트 크기의 한계 때문에 우리는 수도 없는 클릭질, 터치질을 반복해야 합니다. 게다가 모두가 사서도 아니니 체계 없는 분류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리게 합니다. 개똥지빠귀, 직박구리 폴더에 제멋대로 산재해 있는 파일화된 콘텐츠들은 찾기도 힘들고 관리도 어렵습니다. 바탕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가 성의 없이 쓰레기통에 버려지기도 하고, 정작 필요할 때는 어디 들었는지 폴더의 폴더, 서랍 속의 서랍을 뒤지고 다니다 성질만 버리기도 합니다. 무심코 누른 삭제 버튼 한 방으로 날을 지새우며 써 내려간 작품을, 도서관 하나 분량의 자료를 통째로 날려 버리는 날엔 맨붕에 빠져, 이놈의 가상세계를 다 불태워 버릴까, 머리끝까지 열이 뻗쳐오르기도 합니다. 불이 난 것도 아닌데.. 불이 나도 다 타는 건 아닌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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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과 1의 텍스트로 구현되는 온라인 세상의 한계입니다. 현실의 존재는 그렇게 0과 1의 사이 어딘가, 0과 1의 언저리 어딘가에서 자신을 숨기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는 말입니다.



선택 직관성의 제거



만나기로 되어 있는 그것은, 우리를 직관의 언어를 통해 부릅니다. 나라고! 너가 찾던 것이 나라고! 몸짓과 인상을 통해 우리를 잡아끕니다. 우리는 홀리듯 그것을 집어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득템했다며 기뻐합니다. 때로는 인생작을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서가와 매대에 펼쳐져 있는 오프라인 유통환경은 그러한 선택 직관성을 최대한 만끽하게 해줍니다. 견물생심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바라지 않던 것도 눈에 띄고, 집었다 놓았다 하다보면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나 화면에 갇혀있는, 어디 구석탱이 서가를 둘러볼 수도 없게 만든 온라인의 유통환경은 인간에게서 선택 직관성을 제거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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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왠지 텁텁합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분석을 통해 최적의 상품을 추천해준다고 하지만, 그것은 마치 기계가 끓인 라면처럼 텁텁하고 순도 100% 닭가슴살처럼 목이 메이며 전신 안마기처럼 무표정합니다. 선택 직관성은 엄마의 손맛, 공기 반 소리 반의 하모니처럼 살아있는 날 것의 인간미를 더해줍니다. 할머니의 약손처럼 치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소통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정성적인 그 무엇이 오히려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언어적 표현보다 외모, 행동, 접촉, 공간, 시간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들을 더 주요한 소통의 도구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온라인의 콘텐츠 유통환경은 비언어적 표현을 모두 제거하거나 제한해 버렸습니다. 외모는 잘 보이지도 않는 썸네일로 제한해 버렸고, 행동과 접촉은 제거당했으며,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영원성으로 공간과 시간의 유한성과 희소성을 무력화시켜 버렸습니다. 콘텐츠의 비언어적 매력은 제거당한 채, 소비자는 그저 누가 읽었대, 누가 들었대, 누가 보았대라는 ‘남들 법칙’에 따른 순위만을 선택의 기준으로 강요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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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직관성을 제거하고 그 자리를 채운 ‘남들 순위’는 이제 콘텐츠 선택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베스트 셀러 순위는 물론이고 뮤직 챠트의 순위조차 콘텐츠 선택의 홀로 유일하신 기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유일한 경로는 순위입니다. 베스트 셀러 순위, 그것에 들려고 사재기를 감행하며 불필요한 홍보비를 낭비하고 온갖 편법을 자행합니다. 그것에는 공식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의 공식, 멜론 챠트 1위의 공식. 이 공식을 심지어 돈 받고 강의해 주는 강사들도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공식을 알고 있고 공식은 챠트에 반영됩니다. 그러나 소비자는 뻔한 그것에 질리기 마련입니다. 공식에 갇힌 콘텐츠는 유행 따라가면 그만입니다. 영원성을 자랑처럼 내세우는 온라인 디지털 콘텐츠의 유통환경은 오히려 유행 따라 사라지는 쓰레기 콘텐츠의 공장이 되어버렸습니다.



화면에 갇힌 콘텐츠에게, 서랍을 벗어나지 못하는 작품들에게 다시 숨을 불어 넣어주어야 합니다. 생명(生命)은 몸이라 했습니다. 생명을 가진 것은 몸을 가지고 있고 숨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한성의 희소가치를 다시 돌려주어야 합니다. 사용하면 닳고 만지면 손때가 묻는 몸을 콘텐츠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파일인 채로, 0과 1의 디지털 바닷속 어딘가에서 목소리도 잃은 채 물거품이 되어 잠들어 있는 나의 콘텐츠들에게, 헤엄칠 수 있는 꼬리를, 노래 부를 수 있는 목소리를, 대륙을 뛰어 달릴 수 있는 다리를 다시 돌려주어야 합니다. 인연을 찾아 나선 콘텐츠들에게, 선택 직관성을 회복 시켜 운명의 짝을 만날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콘텐츠의 새로운 몸, 리플릿이 그들의 다리가, 목소리가 되어 줄 것입니다.







[리플릿 : Activating Evolution]

01. Genesis

02. 감각의 제국

03. 사람은 무엇을 사는가?

04. 신을 넘어서 가라

05. 네트워크, 진화의 역방향

06. 분리될 권리

07. 공짜인 줄 알았지?



*리플릿의 첫번째 도전, <구해줘 미니홈즈> 텀블벅 펀딩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