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혼란한 글

in #stimcity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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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에는 테헤란로의 한 카페를 찾았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바글거려서 발걸음을 돌리게 되는 때가 많은 요즘, 지하철역에서 한참이나 걸어야 하는데도 간절한 마음으로 굳이 찾아가는 곳이다. 드문드문 자리를 채우고 앉은 몇몇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어쩐지 구슬픈 멜로디의 캐럴, 통유리창 밖 푸르스름한 빌딩 숲, 키보드를 두드리는 푸석한 낯빛의 사람들, 그 공간을 채운 요소들이 각자 제 역할을 힘껏 하는 덕분에 쓸쓸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그 쓸쓸함이 무척 좋았다. 연말의 분위기란 어딜 가나 대체로 그렇다. 그 자체로 12월의 메타포랄까. 12월의 모든 것들은 제 자리가 어디인지 몰라 이곳저곳을 서성이며 맘껏 웃지도 그렇다고 엉엉 울지도 못한 채 저마다 웃긴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어정쩡함이 좀 측은하고 귀엽기도 하다. 물론 나도 그런 표정을 하고 12월을 보내는 중이다. 웃지도 울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고, 그렇게 똑같은 어제이고 오늘일 뿐이라는 사실에 새삼 뿌듯해하다가 해가 바뀌고 봄이 온다는 걸 안다.


나는 그림을 그리며 그 어정쩡한 마음을 표현해 보는 중이었다. 요즘 늘 남의 글만 읽고, 남의 말만 들어서 내 이야기를 쓰고 말할 시간이 통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글을 쓰는 일이 힘든데 더 힘들어진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이석증이라는 이상한 병까지 걸려서 밤낮으로 롤러코스터 위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으로 며칠을 지냈다. 기다렸다는 듯이 괴상망측한 그림들이 앞다투어 튀어나왔다. (이 글도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양사나이의 크리스마스>를 최근 읽었기 때문에 귀가 뾰족한 양사나이도 그렸다. 조용한 카페에 앉아 캐럴을 들으며 양사나이를 그리면 누구라도 마음이 평안해질 것이다.


다만, 옆에 앉은 노란 머리의 남자가 끊임없이 울려 대는 휴대전화를 붙들고 내내 바빴다. 이 어정쩡하고 아름다운 조화 속에 균열의 핑거스냅을 날린 크리스마스이브의 빌런이었다. 카페 안에 있는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노란 머리 남자가 일으키는 소란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 남자는 카페에 있는 모두에게 정신적 테러를 가하기로 작정을 한 것인지 아주 지독한 내용의 대화를 그보다 더 지독한 목소리로 쏟아냈다. 욕과 비아냥이 대부분인 칼과 독 같은 말들. 대화 상대뿐만 아니라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모두에게 상처를 입히는 말들. 대화의 내용을 통해 짐작했을 때 그는 사채업자 같았다. 이를테면,


"저기요, 사장님. 차는 좋은 거 타시던데 고작 그 돈이 없어서 빌리고 있어요?"


같은 말들을 영화 속 금목걸이를 두른 사채업자와 똑같은 톤으로 읊었다. 그에게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의 전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노란 머리 남자는 이죽거리며 그들의 신분을 확인하고자 직업을 묻거나 어떻게든 본인을 증명하라고 윽박 질렀고, 돈을 빌리고 싶은 사람들은 노란 머리 남자가 사기꾼일까봐 불안한지 머뭇거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노란 머리 남자는 화를 내며 더 독한 말들을 쏟아냈다. 대화가 종료되면 앉은 자리에서 펄쩍 뛰며 빽 소리를 질렀다. 혼잣말로 지껄이는 욕은 더 가관으로 듣도 보도 못한 아주 창의적인 것들이었는데 특유의 천박한 강약을 가진 말투 덕분에 더 상스럽게 들렸다.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았다. 이런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이 상황은 고문에 가까웠다. 통화가 이어질수록 더 흥분하고 있는 그가 물건을 던지거나 의자를 발로 차 버릴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렇지만 자리를 옮기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기랄까. 그리고 좀 심란해졌다.


낙천가인 나는 삶이 비참할 수 있다는 것을 2005년 11월 16일에 처음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전기에 감전된 듯이 순식간에 그리고 강렬하게 찾아왔기 때문에 잘 설명할 수가 없다. 육하원칙의 내용을 가진 어떤 경험이라면 구구절절 풀어놓기라도 하겠지만, 그것조차도 아니다. 개연성도 인과관계도 없는 벼락같은 깨달음이다. 잘 설명할 수 없는 온갖 것들이 창밖에 산처럼 쌓여있다. 설명은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고, 나를 이해시킬 필요는 없기 때문에 방치해 둔 지 오래다. 그 차가운 밤 나는 성수역 플랫폼에 서서 열차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하수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창밖에 'VIP 마사지'라고 쓰인 네온사인이 번쩍거렸다. 이어폰에서는 Zero 7 의 Distractions 이 흘러나왔고, 왈칵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이 장면에 <비참>이라는 제목을 붙여놓고 매번 선명하게 되새기고 있다.


크리스마스이브, 테헤란로의 쓸쓸한 카페, 낮은 캐럴을 배경 음악 삼아 노란 머리 남자가 지껄이는 욕들, 수화기 너머 간절한 요청의 목소리들, 그 장면에 <비참 2>라는 제목을 붙이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양사나이의 크리스마스> 속 성 양 어르신이 나를 말렸다.


“저주를 걸어 모두를 여기로 불러들인 거야.”


크리스마스이브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치욕을 당하며 돈을 빌리고 있는 사람들은 저주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며, 그건 독을 품은 말을 던지고 있는 노란 머리 남자도, 이 장면에 <비참 2>라는 제목을 붙이려는 나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저주라는 말이 어쩐지 으스스하고 기분 나쁜 냄새를 풍기지만, 성 양 어르신의 뜻을 헤아려 보면 못 견딜 일도 아니다. 다들 의지와 상관없이 무대에 던져져 맡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발을 멈추지 않고 계속 춤을 추고 있다. 물 위에 뜬 초록색 돛단배가 되어 어쨌든 흘러간다. 물이 세차게 흐르면 힘을 주어 노를 젓고, 고요히 흐르면 힘을 빼고 몸을 맡긴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배가 뒤집히면 물에 빠졌다가 다시 올라타기도 한다. 다만 흐름을 거슬러 나아갈 수는 없을 뿐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를 젓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성 양 어르신의 저주다.


노란 머리 남자의 모습을 다시 한번 눈에 담으며 카페를 떠났다. 그리고는 노란 머리 남자를 소재로 수다를 떨며 맛있는 저녁을 먹고 술도 마셨다.


예상대로 매우 혼란한 글이 되었다. 노란 머리 남자 덕분이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행복한 춤을 추는 중이다. 누구는 저주에 걸렸다고 하고, 누구는 축복이 깃들었다고 한다. 사실 둘은 같은 말이다. 한해의 마지막과 새해의 시작이 똑같은 어제이고 오늘일 뿐인 것처럼.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실은 2020년을 몹시 기대하고 있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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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톨 시티, 롤 스타 크래프트 레퍼런스를 좋아합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 온라인 게임. 그들은 내 어린 시절 전체를 정의했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게임과 무한한 순간으로 보이는 재미있는 순간.

@tipu curate 🐣🐣🐣^^

이석증이 참 힘들다고 들었는데, 이제 괜찮으신가요?
사무실 비용도 아끼려고 까페에서 그러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주가 풀린 2020년이 되겠지요?

🍵

처음 들어보는 병이었는데 주변에 의외로 이석증 앓았던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지금은 좀 괜찮아졌어요! 에버님 따뜻한 새해 맞으셨겠지요? :-)

회사서 일하기 싫어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