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뢰군 연혁) 34, 제3장 제1절 괴뢰군의 패인(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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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를 알수 없으나 <괴뢰군 연혁>은 인민군 총사령부가 51년 3월 한국전쟁의 전투단계를 4단계로 구분하여 평가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4단계는 다음과 같다.

제1기 인민군의 공격

제2기 아군의 상륙작전과 인민군후퇴

제3기 분산된 아군의 후퇴이동

제4기 총공격

여기에서 제1기의 실패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 정치적 실패

ㄱ. 유엔군의 즉시참전

ㄴ. 후방지역에 북한의 공작원 3,000명이나 잠복하고 있었으나 활동하지 못하고 오히려 북한의 후방지역인 사리원 지구에서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

(사리원지역의 노동자 폭동은 잘 알지 못한다.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

2 북한군 자체의 실패

인민군 본부가 국군과 유엔군의 정보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했고, 인민군 전선부대는 비조직적으로 남하만 치중했다

3 인민군 관하부대들은 명령을 받고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인 사안을 확인할 필요)

4 기동력이 없었다.

(전차와 자주포의 효과적인 활용을 못했다는 것으로 이해)

5 인민군은 한국군을 포위하는 방법을 모르고 남하만 했다.

(작전술적 운용을 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이해, 그러나 6사단, 12사단, 5사단, 낙동강에서의 작전은 이와 다름. 아마도 38선 초기전투에서 그럴 수 있을 것임. 이점에 관하여 소련군의 한국전쟁기술에서 북한군의 작전적 운용에 대한 지적과 유사함)

  1. 인민군은 남진하는대신 국군을 격파했어야 하나 이를 이행치 못했다.

(남진하느라고 국군부대를 제거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 이것은 우리도 유사한 잘못을 저지름, 소위 말하는 유생역량말살)

7 시간은 중요하다. 그러나 서울 점령후 1주일을 쉬었다.

  1. 인민군 각부대의 협동작전이 결여되어 있었다.

  2. 인민군은 참모부와 관하부대의 연락이 긴밀하지 못했다

어떤 사단 지휘소는 군단 지휘소 후방에 위치한 경우도 있었다.

  1. 정찰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했으며 무전연락활동은 국군에게 방해당했다.

  2. 보급에 있어서 전표제도는 부적합했다.

직사포탄을 청구했는데 고사포탄이 도착한 경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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