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이방인 - 인생 2막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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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Essay


인생 2막

이사하기전 살던 집은 나름 최대한의 효율을 생각해서 구한 2호선 역세권 원룸이었다. 2호선 낙성대역 근처였는데 집에서 역까지 5분, 강남역까지 지하철로 15분이라 출퇴근하기 좋았다. 1인 가구에 유용한 서비스와 상점이 즐비한 곳이라서 편리한 점도 많았다. 게다가 관리비와 약간의 월세를 합쳐서 집에 관련된 유지비가 한달에 20밖에 들지 않는 곳이었다. 집주인이 수리도 해주기로 했고, 그 주변에서 둘러본 곳 중에 조건이 가장 좋았다. 잘만 버텨내면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집을 계약하기전 전에 살고있던 남자에 대해서 듣게 되었는데, 직업은 공무원이고 6년 동안 이 집에 살다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어 나가는 거라고 했다. 집을 보러갔을때는 방 안에 라면박스로 가득차 있고, 박스들 사이에 침대가 파묻힌 모양새였는데,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에는 궁서체로 ‘인생 2막’ 이라고 적혀있었다. 인생 2막이라...그의 인생 2막은 집같은 집을 산 후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쌓아둔 짐이 공간을 잠식했다고 할만큼 여유공간이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당첨되기전에 적은 것인지, 당첨후에 적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그 '방' 으로 이사를 마음먹었을때 그 남자처럼 그 방에서 인생 2막을 맞이하는 꿈을 꿨던것 같다. 회사에서 잘 버텨서 연봉도 올리고 목돈도 모아 아파트를 사는 꿈.




돈버는 기계가 될 수 없는 나

도배, 장판, 화장실 공사는 집주인이 해줬고, 주방은 시트지를 새로 붙이고 손잡이도 바꿔주고, 옥색칠이 되어있던 창문은 떼서 흰색페인트로 칠해줬다. 안쓰는 물건을 거의 다 버렸고, 짐이 1톤 트럭이 헐렁할만큼 적었다. 그렇게 다 버리고나니 마음이 놓이고 정도 붙었다. 그렇게 애정을 많이 쏟아부었지만 그 ‘방' 에서 사는 2년 동안, 가장 힘든 시기를 거쳤다. 자전거 사고, 우울증, 회사와의 관계...마음과 몸 모든것이 힘들었다. 집 때문만은 아니지만, 집이 영향을 안 끼쳤다고 할 수도 없었다.

장점만 가득 있을 것 같았지만,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은 시기에 좁은 공간에서 오래 지내다보니 마음의 우울이 더 커졌다. 급기야는 몸과 마음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회사도 쉬게되었다. 나는 효율을 추구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었다. 그 방은 일과 삶에 ‘감정'을 배제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사람에게 어울리는 방이었다. 나는 일에도 집에도 그게 참 안되었다.




억소리나는 서울의 ‘방'

더는 안되겠다싶어 이사를 결심하고 집주인 할아버지께 만기에 이사할꺼라고 말했다.

“진짜 나갈꺼야?
계속 있으면 보증금 그대로 해줄께.
공인중개사에서 이 방 좀 고쳐서 보증금 1억 받으래.”

내가 사는 2년 동안 보증금은 더 올라 1억을 목전에 두고있었다. 홍콩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4~6평 되는 원룸의 전세가 1억. 낙성대였으니까 1억이지, 이수나 방배동으로 가면 1억 5천은 줘야했을꺼다. 억소리 나는 서울생활. 침대에서 집안의 전체를 살펴볼 수 있는 방에서 살면서, “한 사람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은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각을 많이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겠지만, 나의 결론은 “최소 10평 이상은 되어야 한다.” 였다. 집을 옮겨야 했다.


다음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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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이방인 - 나의집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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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보증금이 1억이라니;;;;;

아마 5~10년후에는 2억도 등장하지 않을까요?ㅎㅎ

정말 억소리 나네요 ㅠㅠ
한국 집값은 정말 너무 비싼거 같아요 ㅜㅜ
최소한의 공간의 가치, 돈... 여러가지 생각이 오고갑니다.

취업이 쉽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과연 서울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지..
홍콩은 이민가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고 하던데, 한국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ㅎㅎ

한국도 요즘 많이 그런거 같아요~~ 근데 나와도 다른방법으로 겁나 고생이어서 마음이~#

곰돌이가 @kyunga님의 소중한 댓글에 $0.009을 보팅해서 $0.014을 살려드리고 가요. 곰돌이가 지금까지 총 2856번 $34.950을 보팅해서 $35.421을 구했습니다. @gomdory 곰도뤼~

크.. 역시 읽으면서 너무 빠져드네요...
예전의 저의 이야기 같은..
(자전거 사면 집이 비교적 작아짐...=.=ㅋㅋ자덕들만 아는 현상)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ㅎㅎ
자전거는 비싼 취미인건 분명해요ㅋㅋ

ㅎㄷㄷ 그래서 가격대 비슷한 오토바이로..쿨럭;; ㅋㅋ

집이 너무 비싸서 언제가부턴가 한국인의 꿈은 내집마련이 됐죠. ㅠㅠ

그러게요ㅎ 주요도시들은 다 비싼 것 같긴한데, 한국처럼 치솟는 나라도 흔치 않을 것 같아요..!

인생 2막을 잘 펼쳐나가시길 바래요.
곳곳에서 억소리 나는 세상이지만...

억소리나는 세상이지만 죽으란 법은 없겠죠!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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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비싸네요. 젊은 층들은 저 비싼 보증금과 전세 비용을 어찌들 마련하는지..

대부분 대출로 짊어지고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 같아요.
회사를 평생 다닐 수 있는건 아닌데, 지속가능한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요.

마음에도 여유가 필요한 듯, 공간에도 여유가 필요한듯 해요. 좋은 공간을 찾으셨길.

네, 그게 정말 필요했어요. 여유가 있는 공간..!
그리고 찾았습니다ㅎ 써니님도 올해 마음먹으신일 이루시기를 :-)

공간이 몸과 마음에 주는 영향이 정말 크죠.. 좋은 공간(주거공간과 생활공간 모두)을 찾으시길 바라구요. 이 글도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히 찾았습니다!
이제 즐겁게 창작해보겠습니다 :-)

새로운 공간에 적응 잘하길 바래요 경아님~!

넵! 감사합니다 :-)

와.. 1억;;; 다음 글이 기다려져요!
저도 스웨덴에 가기 위해 돈을 모은답시고 교토의 민박집에서 식모살이를 했을 때, 3평도 안되는 다다미 4장짜리 방에서 발소리도 내지 못하고 살다보니 이것은 나를 위한 삶인지 돈을 위한 삶인지... 싶더라구요. 삶에 있어 공간과 사람이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교토에서 사셨군요. 저도 교토에서 잠깐 생활 했던적이 있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매년 교토만 가고 있습니다. ^.^

교토는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죠.

나를 위한 삶인지, 돈을 위한 삶인지… 와닿는 말씀이네용

감사합니다 :)

그러셨군요. 올해는 수모모님을 위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저도 그럴 수 있기를..ㅎㅎ

올해 우리 아주아주 잘 살아보아요!

수모모님두요!ㅎ 행복한 소식 많이 전해주세요~!!

네!! ^0^

서울살이는.. 참 쉽지 않은것 같아요.. ㅠ.ㅠ
고생이 많으셨네용.

쉽지 않은 서울살이 잘 버텨내고 있다면..스스로 칭찬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너무 인색했던 것 같아요. 코브님은 칭찬 많이 해주세요ㅎㅎ

경아님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 수록 자꾸 듣게 됩니당.

그런가요?ㅎ 서울살이는 서울에서 살아보신 분들이라면 다 공감하시지 않을까 싶어서 적기 시작했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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