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팔리지 않는 이유

in #kr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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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팔리지 않는 이유



광화문에서 일정이 일찍 끝나서 집에 가기에는 아쉬운 시간에 교보문고를 들렸다. 서점을 둘러보다가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책이 불현듯 생각나서 검색을 했다. 나온 지 좀 된 책이라 그런지 재고가 1권뿐이었다. 진열대에서 찾을 수 없어서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곧 가져다주었다. 책의 가격은 만오천원이었고 비닐로 포장이 되어 있었다. 살펴볼 기회도 없이 포장된 책을 살지 말지 바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책을 꽤 산다는 나도 그런 상황에 닥치고 보니 당황스러웠다. 책의 내용에 대한 정보 없이 만오천원을 내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구매를 보류하고 외서 코너로 발을 옮겼다. 마침 1년에 한 번 한다는 할인 기간이었다. 외서가 20% 할인한다는 건 여행을 가지 않고도 현지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니까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잠시, 마음에 드는 그림책을 몇 권 발견했는데 할인을 받아도 대략 2만원 후반대~3만원였다. 2권을 사면 5만원, 3권을 사면 대략 8만원쯤. 몇 번을 들었나 놨다. 책을 살 때에는 왜 이렇게 고민이 되는 것일까?


책을 살 때에는 왜 이렇게 고민이 되는 것일까?




불확실한 행복


책 구매는 불확실한 행복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많이 소비하는 먹을 것, 입을 것, 잡화 등은 구매와 동시에 기대치가 충족된다. (물론 책을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책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을 가질 수 있다. 돈만 내면 가질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완전히 소유하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설령 시간을 들였다 하더라도 기대와 다르게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을 구매한다는 것은 불확실한 행복을 사는 것이며, 시간과 노력을 들이겠다는 다짐도 일부 포함되는 것 같다.

양장본 책의 보통 가격인 2만원을 예로 들면 체감이 확 된다. 만약 2만원짜리 신상 치마가 날씬해 보이기까지 한다면 너도 나도 지갑을 열었을 것이다. 치킨이 먹고 싶은 날에 2만원은 손쉽게 쓸 수 있는 돈이다. 2만원으로 예쁜 카페에서 케이크 한 조각에 커피 두 잔을 마시면 금방 행복해질 수 있으며 인스타그램에 인증샷도 남길 수 있다. 앞에 언급한 치마, 치킨, 카페는 보장된 행복이며 시간과 노력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치품도 아니고 필수품도 아닌


인간의 욕망 중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 식욕, 수면욕, 성욕 등이 있다면 책은 그 어느 것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는 책이 사치품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책은 필수품도 아니고 사치품도 아닌 것 같다.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물건에 가까운 것 같지만 사치품으로 정의 내리기도 힘든 것 같다. 인간의 욕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니 구매력도 낮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만약 책이 식욕을 떨어뜨려 준다면?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더해준다면? 불면증을 치료해준다면? 책은 다르게 인식되었을 것이다. 책을 산다고 해서 내가 좀 더 멋있어지지도 않으며, 당장 더 나아질 것이 없다. 반대로 책을 안 산다고 해도 잃는 것이 없다.


  • 사치품의 정의
  • 위키백과 : 사치품 또는 호사품은 고소득 소비 계층을 겨냥하여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고, 적은 물량으로 고급스럽게 만들어 낸 상품이다.
  • 네이버 백과사전 : 분수에 지나치거나 생활의 필요 정도에 넘치는 물품.




쾌락의 속도


인간은 이야기를 정말 좋아하고 죽을 때까지 소비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소비하는 방식이 텍스트 > 이미지 > 영상으로 급변하고 있다. 유튜브를 틀면 손쉽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영상을 보기 전에 수없이 노출되는 광고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이제는 다들 알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공짜이기까지 하다. 영화는 5~10분짜리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보고, 책 소개는 카드 뉴스의 이미지로 슥슥 10초 만에 넘겨보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쾌락을 주는 속도가 너무 느리며 비용까지 지불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텍스트를 주로 운영되는 브런치도 성장세가 더디다고 생각한다. 소비자는 10초 아니 지금 당장 쾌락을 느끼고 싶어 하는데 텍스트는 그 속도를 절대 따라가지 못한다. 빠르게 쾌락을 느낄 수 있는 볼거리가 널릴 세상인데 뭐하러 돈을 주고 '읽을거리'를 소비하나라고 우리의 본능이 이야기하고 있다.




공공재로 인식


자그마한 살롱에서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도서관이 있으니까 책 사는 돈이 아깝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사람들에게는 책은 공공재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책이 팔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구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책을 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살 때 망설이게 되는 이유를 적어보았다. 그럼에도 책을 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생각의 힘을 기르기 위함이다. TV의 다른 이름이 '바보상자'라는 것은 다들 알 것이다. 영상은 즉각적인 쾌락을 주는 만큼 모든 감각이 동원되고 생각의 틈을 앗아간다. 이건 경험으로 알 수 있는데, 나의 경우 영상을 보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할수록 창작물이 적어진다. 나는 영상을 많이 소비할수록 생각의 시간이 줄어들고 > 영원히 소비자로 남을 확률이 커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직장이 없어지는 시대, 개인이 부각되고 개인으로서 생존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각자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기르고 이것을 바탕으로 무언가 만들어내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종이책은 몇 백년간 이어져온 플랫폼이다. 종이책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해도 책을 구매하고 읽는 사람들이 줄어든다면 이야기를 담을 매체가 하나 줄어드는것이다. 이는 곧 우리의 미래의 밥그릇 하나가 줄어드는 것이다.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해서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 당신은 미래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콘텐츠를 소비할 것인가?

지난 몇 달간 책을 정말 많이 샀다고 생각했는데 지출내역을 살펴보니 두 달간 23만원 정도를 썼다. 책 구매비용 치고는 적지 않지만 겨울 패딩 하나 값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책이 안 팔려서 서점은 출판사에서 책 진열비를 받아 유지하고, 책이 안 팔려서 외국처럼 가벼운 문고본을 만들어낼 수 없다. 여전히 암담한 현실이지만, 미리 투자를 받아 책을 판매하는 북펀드, 챕터별로 쪼개서 판매하는 전자책 싱글즈, 독립출판물 등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재미있는 게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오늘은 책을 읽어보는 게 어떨까?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생각 한 조각을 찾기 위해서.


교보에 갔다가 포장된 책 구매가 망설여져서 쓴 글입니다.
삘받을때 열심히 씁니다 :-)
언제 또 삘이 올지 모르지만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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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책은 한권만 구매하는 법이 없고 보통 한번 서점에 가면 여러권 사기 때문에 6-7만원은 기본으로 나가요. 그래서 더욱 '서점에 와서 읽으면 되는 책' 또는 '이건 소장각' 등으로 나름의 카테고리를 분류해서 현명하게 구매하려고 하지요. 어쨌든 서점은 생각의 힘을 기르는데 천국인 곳이기에 설레기도 하구요. 영상을 많이 소비할 수록 생각의 시간이 줄어든다는 말도 어느정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생각 한조각을 찾아서라니. 멋져요.^^ 삘이 자주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책 소비하는 방식, 구매하는 방식 모두 생각이 많아지네요. 글을 쓰고 있어서 더 그런거인 것 같기도 해요. 글쓰는 사람들이 더 잘 먹고 잘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많이 들거든요ㅎㅎ 오늘도 더 나은 생각 한 조각을 찾아..!

뜨끔!! 책을 사본게 언제인지...
워낙 다양한 채널로 영상을 접하다보니 점점 책은 멀리하게 되는듯 하네요!
쾌락을 주는 속도가 너무 느리며 비용까지 지불해야하지만... 책만의 매력이 분명 존재하는데 말이죠!!

그쵸, 시간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게 많으니깐요ㅎ
머지않아 디지털 피로도가 폭발하면 책을 보는게 치료법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한 3개월간 한권도 안읽었더니 어휘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는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리고 대화할때도 체감이 되서 요즘은 일부러 책을 보고 있습니다.

흠..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확실히 어떤 콘텐츠를 소비하느냐에 따라서 대화의 주제가 달라지는것 같긴해요ㅎㅎ
꾸준히 읽어나가야겠어요~!

한국 사람이 워낙에 책을 안 읽기도 하지만(그 원인을 입시 위주의 교육이라고 보더군요) 책 판매가 줄어드는 건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해요. 나이키의 경쟁자가 닌텐도라는 말처럼, 책은 영상물에 밀리고 웹소설(?) 등에 밀리고 있다고 해요.

도서관의 경우,,, 잘못 알고 계신 분이 많다고 해요. 도서관 숫자가 많을수록 출판사가 이득이라고 해요. 보통 초판을 1000권 낸다고 했을 경우, 도서관이 초판만 사줘도 출판사는 손가락은 빨 수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과 비교했을 때 도서관이 너무 적어서 그게 안 된다고 해요. 일본은 도서관이 많아 출판사들이 책 판매량에 크게 신경 안 쓰고 좋은 책을 내거든요. 안 팔릴 책이라도 좋다면 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인구도 겨우 5천만인데다가, 책도 안 읽는 국민성에, 도서관도 적어서 책을 내도 도서관이 사주는 책은 100권이나 되려나. 그래서 요즘은 초판을 300권 500권을 내기도 한다는군요. 100권도 안 팔릴 거라고 보고 내는 부수라고 해요. 제작비도 못 건지는 부수지요. 그러니까 도서관을 더 더 더 많이 애용해서 도서관 늘리기에 도움이 되면 좋아요. ^^

많은 부분 공감해요. 글을 쓸 때는 일반 소비자를 생각하고 썼는데, 기업 소비자인 도서관이 구입하는 책의 규모도 참 적네요...도서관은 만인에게 공평한 공간이고, 책에게도 공평한 곳이니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자주 이용해주어야겠네요..!

이렇게 흘러가다가는 책, 출판업은 없어지지는 않게지만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존재하지 못하는 산업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암담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책만큼 파급력이 있는 물건이 어디있겠냐는 생각을 여전히 들어요.

글을 쓴다는거 서점에서 망설여진 그 순간으로 이렇게 훌륭한 글을 쓰시다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글로도 끄적여보고 그러고 있습니다ㅎ
연습의 일환인데, 생각한것을 더 잘 전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

언젠가 들은 얘기입니다.
종이 다루는 사람은 늘 주리고 산다고
꿈에 주리고 밥에 주리고 이름에 주리고...
책을 사는 사람이 없음에서 기인되는 문제겠지요.

너무 슬픈 얘기인데 딱 들어맞는 이야기인거 같아서 더 슬퍼요.
종이 다루는 사람은 늘 주리고 산다고..ㅠㅜ
그래서 제가 종이를 멀리하려고 하는데 마음이 자꾸 끌리네요ㅎㅎ

이제 책은 책을 쓰는(쓰고자 하는) 사람이 주로 보는 거 같아요.
책을 내자면 관련 책을 안 볼 수가 없거든요.
남들을 어떻게 보고 있나?
나는 그들과 어떤 점에서 새로운가?...

저도 그렇게 느껴요.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것 같아요.
책 관련 산업에서 가장 큰 수입은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육이라던가 그런 것들인거 같아요.
참 아이러니해요ㅎ

저의 마음을 대변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도 책을 사는 이유는 도서관에서 빌리면 잃어버릴까 찢겨질까 걱정되서 맘놓고 못 보겠어요..

아이들이 혹시 그렇게 할까봐 맘편히 구입을 하는데..

요즘은 중고시장에서도 많이 구입하는 편이예요..

그런데도 작가님들에게 은근 미안하네요.. 새책을 구입해야하는데..

아이들이 맘편히 볼 수 있도록 책 구매를 하시는군요~!
새책을 구입하면 작가에게 더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중고책을 구매해서 책을 읽는것으로도 작가들은 좋아할꺼에요. 읽다보면 언젠가 새책을 살 수도 있는거니깐요! 저도 중고책도 사고 새책도 사곤 해요ㅎㅎ

책 읽는 풍경이 점점 드문 시대입니다. 아쉬워요.

지하철에서 가끔 아무것도 안하면서 사람들을 보면 90%이상이 핸드폰을 보고 있어요.
가끔은 그 모습이 낯설때가 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