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수필] 머피의 법칙을 깨다

in #zzan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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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는 순간부터 뭔가 모르게 꺼림직한 순간이 있다. 그날이 그랬다. 분명 오랜 시간 숙면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짓누르는 공기의 무게가 느껴질만큼 몸이 무거웠다. 불편한 몸을 겨우 일으키고 욕실로 향했다. 반쯤 풀린 눈으로 양치질을 하기 위해 뻗은 손은 면도기를 잡고 있었다. 문득 거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면도기를 내려 놓았다. 상상만해도 끔찍한 순간이었다.

출근길 차 안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듣기 위해 비상등을 켜고 잠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억지로라도 흥을 내보려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지나가던 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리더니 창문을 내리고 쌍욕을 하며 지나갔다. 주정차 금지 구역도 아니고 버젓히 비상등까지 켜 놓은 채 잠시 정차를 하고 있는 게 욕 먹을 만한 짓인가?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심호흡을 하며 흘러나오는 음악에 집중하며 마음을 다 잡았다.

어느 정도 여유를 찾고 올림픽 도로 2차선에서 정규속도에 맞춰 달리고 있을 때였다. 사이드 미러 뒤쪽으로 급하게 차선을 변경하던 차가 눈에 들어왔다. 1차선으로 달리던 차와 내 차 뒤를 바짝 붙더니 경적과 함께 신경질 적으로 운전했다. 급기야 내 앞으로 돌아 오더니 급브레이크를 걸었고 하마터면 접촉사고가 날 뻔 했다. 당황하며 속도를 줄인 나를 뒤에 남겨두고 검은 연기를 내뿜던 차는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순간 화가 치솟았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연속적으로 부정적인 상황이 일어나자 통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한 번 일어난 화는 곧 내 몸과 마음을 장악했고, 그날 하루 온종일 나를 괴롭혔다. 꼭 머피의 법칙처럼 좋지 않은 일들이 차례차례 일어났다.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이들의 순수한 미소가 그나마 하루 중 유일하게 나를 웃게 만들어 주었다. 한참을 아이들과 즐겁게 놀던 와중에 첫째와 둘째가 싸우기 시작했다. 집에서마저도 나를 힘들 게 하는 현실에 다시금 화가 났다. 아이들을 훈육하자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솔직히 미안한 마음보다 나도 함께 울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아내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잠시 누워 휴식을 취했다. 잠시 후, 아이들이 나를 따라 들어오더니 다시 해맑게 웃으며 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울고 불고 난리를 치던 아이들이 고작 몇 분 사이에 즐겁게 웃는 걸 보니 참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나와 아이들이 다른 점을.

아침부터 일어나는 부정적인 상황을 나는 민감하게 받아 들였고, 그것에만 집중했다. 분명 힘들었던 하루였지만, 나에게 미소를 건내는 사람과 다정하게 반겨주는 사람이 있었고 우연치 않게 일어난 작은 행복 역시 존재했었다. 머피의 법칙 뒤에 언제든지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셀리의 법칙이 공존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이들은 순수하다. 그래서 주변 신호를 쉽게 받아 들인다. 즐거우면 즐거운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거짓이 없다. 다시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과 함께하며 내 감정도 즐거운 신호를 마음껏 받아 들였다. 이미 지나간 부정적인 신호들은 이제 더이상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머리속에서 머피의 법칙을 깨버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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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쥐님 부지런함은 최고세요. ㅎㅎ

종종 사회가 뭔지 모를 분노에 쌓인 느낌을 받아요. 구체적 대상을 찾을 수 없는 분노가 들끓어서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는 상황들.
자본주의, 성과주의 사회라 그럴까요?
분노 유발의 상황을 잘 포착하셨어요, 팥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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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저 부끄울 뿐이네요;;;ㅎㅎ

아이들에게 정말 많은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상처준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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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마음이 다 같나봐요 ㅠㅠ
오늘 하루 더 잘해줘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