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즈화의 조선전쟁 부록 6-2 중공군의 제2차 전역이후 남진, 김일성과 팽더화이 2차 논쟁

in #zzan8 months ago

김일성 모택동 스탈린.jpg

1월 11일 펑더화이는 마오쩌뚱의 급전을 받았다. 김일성의 휴식을 줄이자는 주장에 대해 스탈린의 주장을 근거로

“인민군 1,2,3,5 군단은 모두 한강 이남에 제1선을 구축하고, 지원군은 인천 및 한강이북으로 철수해 2-3개월 동안 휴식을 취하며, 인천과 서울은 지원군이 경비를 맡는다. 인민군은 현재 동베이지역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신병으로 보충하고, 만약 김일성이 휴식과 보충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계속해서 진군할 수 있으며, 인민군이 진격해서 적을 공격할 때에는 조선정부가 직접 지위하고, 지원군은 인천,서울,및 38선 이북의 방어를 담당한다”는 내용을 제안

이어서 펑더화이와 김일성 박헌영간 휴식기간을 줄이는 문제로 치열한 논쟁이 진행되었으며 펑더화이의 완강한 입장으로 결국 김일성도 2달의 휴식과 정돈에 동의했다(그 과정은 396-397)

그러나 김일성은 중국의 태도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북한주재소련대사는 김일성의 불만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미군이 조선에서 철수를 준비하고 있을 때, 중국군은 수원에서 38선 지역으로 철수하면서 대규모의 공격을 포기했으며, 종종 준비가 안된 부대를 파견해 공격에 참가시키면서 노골적으로 38선 지역에서 전투를 중단했는데, 이런 모든 행동은 중국 지도자들에 대해 조선 지도자들이 갖고 있던 존경심에 영향을 주었으며, 조선인들도 중국이 어떤 어려움에 처해있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398, 주 118 라주바예프가 모스크바에 보낸전보, 1951년 9월 10일 심지화편, 조선전쟁해밀문건, pp.1022-1026)

전쟁이 끝난후 조선노동당 내부에서는 중국이 한반도를 완전하게 통일하려 하지 않았다는 소문돌았다.

페도렌코가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원군이 1951년초 적들이 실패에 직면했을 때, 조선을 완전히 해방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는 소문이 떠돌았다.(398, 주119 1954년 4월, ЦХСД, ф.5, оп.28, д.314, л.48)

펑더화이의 이런 태도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 ? 션즈화는 ‘군사적인 각도에서, 펑더화이의 주장은 당연히 실사구사적이며 충분한 근거가 있는 반면, 김일성은 오로지 자기 입장만 생각하면서 앞뒤를 가리지 않은 채 행동했는데, 이는 정치적 고려와 함께 다른 요인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고 평가했다.

김일성이 제3차 전역이후 조속하게 전투행위를 계속하려고 한 것은 가급적 많은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서 였다. 미군을 완전히 축출하기 어렵다고 느꼈던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펑더화이는 애초에 전쟁을 수행하되 미국을 완전하게 축출하기 보다는 한반도에 그대로 묶어 놓아야 한다는 스탈린의 구상에따라 움직인 것인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즉 북한과 중국 그리고 소련은 각각 전쟁목표가 달랐던 것이다. 그 결과 김일성은 최대한 남쪽으로 내려가 지역을 확보함으로써 종전후 유리한 입장에 서고자 했던 것이다. 이문제에 대해서는 당시 북한의 노동신문이나 이시기의 북한 문건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중국은 전쟁의 목적을 38선정도에서 유지하는 것으로 설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군에게 결정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은 상태에서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이 제안한 정전회담(1월 11일 유엔3인위원회)을 도외시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당시 중국은 정전회담을 거부했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중국의 전쟁목적이 미국을 한반도에 묶어 놓는 것으로 밖에 설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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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덕회가 미국을 남겨두려 했다니 ㆍᆢ 처음들어본 내용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