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스티미언: 봄소풍]내 돈 내고 남의 일 대신 해주기

in #kr-life6 years ago

내 돈 내고 남의 일 대신 해주기

주말만 되면 밖을 쏘다니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달리, 아이는 집을 너무 좋아한다. 장거리 여행을 너무 싫어하는 탓에 어떻게 잘 꼬드겨서 친척집에는 자주 데리고 가지만 그 외의 장소는 참 힘들다. 모처럼 미세먼지도 없고 날씨도 포근했던 지난 달 어느 주말, 오전 내내 가 볼만한 곳을 알아보다가 아이가 잠든 틈을 이용하여 납치하듯 카시트에 태워서 시외로 향했다. 중간에 잠을 살짝 깼는데 ‘산토끼 공원에 토끼 만지러 가자’는 아이 엄마의 말에 수긍하고 다시 잠이 들어서 다행이었다.

대구에서 놀러가기에 부담 없는 동네는 기껏해야 구미, 성주, 고령, 경주쯤이다. 아이 엄마가 동네 맘까페에서 경남 창녕의 ‘산토끼 노래동산’이라는 기묘한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얻어서 네비를 찍고 그 쪽으로 향했다. 뭐 하는 곳일까. 토끼공원도 아니고 토끼동산도 아니고 산토끼 ‘노래동산’이라니.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입장객들이 산토끼 토끼야 노래를 합창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개화 전에 움직인 나들이라 그런지 시원하게 달려서 갈 수 있었다. 도착해서 안내판을 보니 산토끼 노래동산은 창녕군 이방국민학교에 재직하던 이일래 선생이 국민동요인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를 만든 것을 기념하여 만든 공원이다. 스토리텔링의 힘! 작곡가의 이름을 빌려 토끼를 풀어놓고 관광객을 모을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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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매표소

토끼님을 영접하기 위한 신도들로 북새통이다. 경남권 태권도장에서 온 단체손님이거나 2~6세의 아이 손을 붙잡고 들어온 젊은 부부들이 대부분이다. 아주 가끔, 토끼를 보러 왔으나 사방팔방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어린 아이들만 실컷 본 뒤 멍한 눈빛으로 퇴장하는 대학생 커플도 볼 수 있다. 마치 2001년쯤, 한국 SF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광고에 혹해서 영화를 보고 나올 때의 내 눈빛 같았다. 그 영화 제목은 용가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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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동물원이 그렇듯, 토끼는 사람을 귀찮아한다.

토끼는 실내와 실외, 두 군데 나눠서 풀어놨는데 실내에는 어린 토끼와 외국산 토끼들을 많이 모셔놓았다...고 하는데 그 토끼가 그 토끼다. 어쩌면 다 똑같은 토끼를 풀어놓고 간판만 다르게 붙인 게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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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토끼 먹이를 주다가 손가락을 물려 피를 본 적이 있다. 아기들이 많이 오는 곳 특성상 먹이를 주면서 다칠 일을 방지하기 위해 먹이주는 구멍을 따로 만들어놨지만 체험장이 으레 그렇듯이 아무도 그 구멍을 이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배때지가 불러터진 토끼놈들은 풀을 귀찮아한다. 건방진 놈들 같으니. 많은 아이와 부모들이 자판기에 천 원짜리를 넣고 건초를 사지만 두어 번 시도하다가 짜증을 내고선 토끼를 향해 풀을 던지거나 대충 흘려놓고는 자리를 뜬다. 토끼가 풀을 받아먹기만 해도 사람들은 즐거워서 팔짝 뛴다. 아이는 진심으로 즐거워서 뛰는 것일테다. 조공을 바치고서 기쁨을 느끼는 걸그룹의 사생팬을 보는듯하다. 부모는 아이를 위한 연극으로 팔짝 뛸 것이다. 그들의 속마음은 어떨는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어째 신나는 동작과 들뜬 목소리가 썩소를 품은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히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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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교 시주함

다들 시주함에 천원짜리를 넣고 풀 한 봉지를 얻어 사육사를 대신하여 밥을 준다. 나는 아이가 보지 않을 때 뒤에서 땅에 떨어진 풀을 줍는다. 아이가 ‘나도 풀. 풀 주세요’를 외칠 때쯤엔 본심과 다른 인자한 미소를 띄며 반 줌 정도 모은 마른풀을 넘겨주었다. 집사람이 모은 것과 더하니 양이 제법 된다. 아. 명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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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우릴 유심히 보았다면 우리는 이런 모습이었을터

아이들은 토끼에게 풀을 준 것으로만 만족하겠지만 부모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 자기 자식도 먹여야하는 숙명에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매점으로 향한다. 공원 내 건물 중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은 매점이었다.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1,500원짜리 컵라면은 역시 최고 인기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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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 우아하고 싶었다. 3개월전 내가 4백만원치를 지불하고 샀던 언브레이커블이 며칠 새 2배 떡상했기 때문에 여유를 부리고 싶었다.(2배 정도 급등해서 –90%였던 투자수익이 –80%가 되었기에 마음만은 부자였다. 나는 아직 320만원을 다른 투자자들에게 골고루 기부한 상태이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이런 좋은 일을 할 수 있어 뿌듯하게 생각한다. 집사람은 내가 이렇게 마음이 넓은 사람인지 아직 모른다. 여보, 어제 당신이 차 긁어서 수리비 20만원 나온 것 갖고 짜증내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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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자라서 아낌없이 거금 6천원을 지불했다.

전시장 겸 공연장이 있어서 들어갔더니 누구나 재미없어할만한 것들이 빽빽한 글과 함께 전시되어있었다. 이를테면 유럽의 토끼 전설, 우리나라의 달과 토끼의 관계 같은 것들. 그 중 내 눈을 가장 오래 끌었던 것은 인도산토끼와 일본산토끼였다. 겉보기로 둘의 차이가 무언지는 몰랐지만 인도가 핵보유국이라는 것과 일본이 한 때 지구의 1/5정도를 지배했던 적이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저렇게 강력한 산토끼를 보유하고 있는 전투민족이었구나. 공연장에서 10여분짜리 3D입체영상을 보았다. 아이가 처음 체험하는 극장이다. 내 인생 최초의 극장 경험은 시청에 딸린 강당에서 본 우뢰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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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오늘 고생의 하이라이트, 아이에겐 오늘 여행의 하이라이트, 바로 놀이터. 아이는 미끄럼틀만 보면 얼굴에 웃음을 가득 채우고 기쁨의 비명으로 주변을 가득 채운다. 나는 아이를 들었다 놨다가 올려줬다가 같이 안고 미끄럼틀을 타는 와중에 근육을 젖산으로 가득 채운다. 수많은 가장家長들이 이미 지쳐 그늘에 널부러져 있다. 가끔 ‘아이를 위한 여행’이라는 게 거짓이라는 느낌이 든다. 관광지에서 실컷 고생하고 다녀와서 남는 건 ‘아이를 생각해서 고생스럽지만 어딘가를 다녀왔다’는 내 만족일 뿐이지 아이는 ‘처음 보는 미끄럼틀’이면 어디든 좋아하는 것을. 조금 진지하게, 아이를 위해 ‘동네의 다른 아파트 단지 놀이터 투어’를 해볼까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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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원은 토끼풀 판매대금과 입장료만으로는 수익이 성에 차지 않는지 썰매장을 짓고 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완성되면 썰매는 별도로 이용금액을 받을 것이지만 그 금액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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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찡꼬 소리를 내는 자전거 놀이기구

많은 아이들이 자전거처럼 생긴 놀이기구를 타고 있었는데 페달을 밟아 돌리면 전기가 생산되면서 전광판에 생산전력이 표시된다. 이 때 묘한 음악이 재생되는데 정선 카지노에서 들었던 사운드와 매우 흡사하였다. 어림잡아 6대의 자전거가 쉴새 없이 돌아가는데 슬롯머신 구역을 지날 때의 바로 그 느낌이었다. 저음의 느린 화음으로 묘한 최면 상태에 빠지게 하여 쉬지않고 전기를 생산케하려는 공원측(창녕군시설관리공단)의 음모를 느꼈다. 공원 이용객들을 피카츄로 만들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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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넌

오늘의 가장 큰 미스테리, 이 캐릭터는 도대체 뭘까. 창녕군청과 경상남도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아도 알 수 없는 닌자를 노려보며 소풍을 마쳤다. 6세 이하 어린이를 데리고는 대구에서 갈만한 곳이라 생각한다. 토끼만 모아놓기는 좀 그랬는지 조랑말이나 미어캣 같은 동물들도 5~6종 있고 그늘만 잘 찾으면 돗자리 깔아놓고 시간보내기 좋은 곳 같다.

방문장소: 산토끼 노래동산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 이방로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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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인도산 일본산 토끼 정말 엄청나네요! 무슨 근육질 캥거루라도 보는 느낌이에요! 역시 대구님 글은 재미있어요. 한밤중에(라기 보다는 새벽이군요) 정말 소리내서 웃으면서 읽었습니다ㅎㅎㅎ

아닛 우티스님을 여기서 뵙는군요!! ㅋㅋㅋㅋ
일기는 언제쯤 다시 올라오는건가요 ㅠㅋㅋ (아니면 단타일기라도...)

반갑습니다! 우티스님도, 저도 글이 뜸해서 오랜만에 뵙는 느낌이네요. 지방 시,군청에서 만든 조형물들은 대부분 저렇게 강력하고 우락부락 하더라고요. 아마 마감처리를 부드럽게 하는 게 더 난이도가 높은 모양입니다. 관광지 다녀와서 혼자 궁시렁대는 글에 깔깔거려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집에 인도 토끼 한마리 키우시면 고양이가 좋아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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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짱 웃겨요ㅋㅋㅋㅋㅋㅋ

이삭줍는여인들ㅋㅋㅋㅋㅋ

인도 산토끼... 캥거루인줄...ㅋㅋㅋㅋ

저 표창 던질것 같은 닌자는 뭡니까ㅋㅋㅋㅋ

투머치 조크ㅠㅠ투머치조크ㅠㅠㅋㅋㅋ 육아일기로 이렇게 웃길 수가 있나요?ㅠㅠ감동의 눈물이 나오네요ㅠㅠ 덕분에 웃고 갑니다^^ㅋㅋ

아앗 맞아요 바로 이런 캥거루같아요! 제가 생각한 느낌의 사진이 바로 댓글에 있어서 놀랐어요ㅋㅋㅋ

그쵸ㅋㅋㅋ 넘 웃겨요ㅋㅋㅋㅋㅋ

우와.. 무시무시하네요. 그래도 인도 산토끼와 일본 산토끼가 연합하면 이 캥거루를 이길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게 캥거루인가요 아니면 몬티 파이선의 성배에 나오는 토끼인가요?

ㅋㅋㅋㅋ덕분에 제목만 들어왔던 몬티 파이선의 성배,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봤습니다.

왠지 동화스러운 곳이네요.. 정말 아이들이라면 좋아할 것 같은 ㅎㅎㅎ

지금은 동물들을 좋아하는 단계인가봅니다. 특히 동화책 단골 손님으로 나오는 동물들은 무서워하지도 않고 재밌어하네요. 움직임 욕구가 넘쳐서 놀이터를 좀 더 좋아하긴 하지만. 매주 주말, 제가 나가고 싶어서 아이가 차 타는데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좀 먼 곳이 어디있을까 찾는데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ㅎㅎ 왠지 몹시 귀찮은듯 했지만, 실은 더 신났던 것같은 느낌입니다~^^ 회춘하셨을 듯하군요...

신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그렇죠ㅋㅋㅋㅋ곳곳에 대형 실로폰이 있어서 그거 신나게 치고 왔습니다. 동요 '오빠생각'을 실로폰으로 연주하니 정말 서글프면서 좋더라고요. 다녀온 이후로 이선희가 부른 오빠생각 자주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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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꾼을 연상하게 하네요 ㅎㅎ
어린 꼬마들에게 좋겠어요~ 꼬마들 구경만 하고 가는 대학생커플은 안타깝 ㅋㅋㅋ

ㅎㅎ저는 톰소여가 생각나던데요. 담벼락 페인트칠 하는 벌을 받았는데 그걸 능청스럽게 재밌는척 하면서, 지나가는 애들한테 돈 받고 선심쓰듯 한번씩 칠하게 해주던..

아니 밑에 의자 캐릭터요 ㅎㅎ

아, 듣고보니 그렇네요. 가마꾼 둘이 벤치를 들고 있는 형상이군요ㅎㅎㅎㅎ

언브레이커블이 떡상해서 -80퍼.. 왠지 동지애... ㅎㅎ

제가 비트캐쉬 사 놓은 수량과 평단가를 아시면 동지애에 연민도 추가되리라 믿습니다ㅠㅠ 우따꺼 ! 가즈아!

언브레이커블...

이름값 못하더라고요. 폭락장에도 부서지지 않을것처럼 하더니, 상승장에도 부서지는 쿠크다스 같은 놈이었습니다.

저도 언브로 투자자들에게 좋은일 시켜준적 있어요 ㅎㅎ 기부천사

귀엽네요 ㅎㅎ 이런 곳이 있군요! 감사합니다.

댓글감사합니다^^ 다음번에는 '꿀벌나라 테마공원'이라는 곳에 대해서도 한 번 써보려고 합니다. 자주 뵐게요.

토끼라는 테마를 통해서
이렇게 운영하는거 보면
제목 그대로 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제목같은 생각은 5~6년 전에 강원도 양떼목장에 가서 처음해봤습니다. 입장료를 대신하여 3천원어치 먹이를 사서 목장을 걸으며 악당같은 양들에게 먹이를 갈취당하고 나니 '어, 이거 내가 관광하러 왔나 일하러 왔나'싶더라고요. 어린 아이 덕분에 동물구경은 많이 하고 삽니다.

우티스님네서 리스팀된 것 보고 놀러왔어요 ㅋㅋㅋㅋㅋ
글이... 너무너무 좋으네요.
진짜 부분부분 빵빵 터지는데 정말 재밌게 잘 쓰시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혼자 중얼거리듯 쓰는 글인데 가끔씩 제가 봐도 재미있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yuky님의 글을 몇 개 열어봤는데 에너지가 넘치시는 분 같습니다. 넘치는 에너지 구경하러 종정 가겠습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