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버지니아 울프에 공감하는가

in #manamine6 years ago (edited)

A short summary in English is to be found at the end of thi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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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유독 왜곡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각종 매체에서 자주 언급되는 책은 조악한 요약을 통해 소개가 되고, 굳이 읽어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단편적인 기억에 의해 계속 그 형태로 굳어져가게 마련이다.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케임브릿지 대학 강연에 살을 덧붙인 에세이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을 보자. 가히 스포일러라 할 만한 제목이다. 울프의 이름을 들어보고 그녀에 대한 대략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책이 여성이 공간적,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리라고 예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초기 페미니스트의 주장 정도로 해석될만한 이런 메시지는 오늘날에 와서는 특별히 급진적이지도, 특이하지도 않다. 굳이 자세히 읽어볼 필요를 못 느낀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기만의 방은 그런 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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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흘러간 시대의 의식 수준을 낮춰보는 경향이 있다. 울프의 케임브리지 대학 강연은 1928년, 그 내용을 묶어서 자기만의 방을 출간한 것은 이듬해인 1929년이다. 여성이 투표할 수 있게 된지 약 10년 가까이 흐른 때이다. 당대 최고의 지성이 그저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권장하기 위해, 당시 여성으로서 최고의 교육을 받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해야 했을까.

이 의문에서 출발하면 자기만의 방에 대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조명된다. 자기만의 방은 여성 일반이 아니라, 여성 중에서 미래의 지성인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대중이 소비할 수 있는 작은 한권의 책 형태로 출간되었다 하더라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울프 본인이 상속으로 인해 연 500파운드의 수입이 생긴 경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암시하는 것은 방해 받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지, 하루 하루 노동과 맞바꾼 돈으로 지탱하는 힘겨운 경제적 독립이 아니다. 울프는 현실주의자이다. "자기만의 방"을 가진 여성이 되려면 아버지든, 오빠든, 남편이든, 이모든 간에 경제적 여유를 마련해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울프를 페미니스트로 보기 힘든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녀가 여성으로서 글을 썼고 여성에 대해 "여성적인" 글을 썼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현대적인 의미에서 페미니스트/여성주의 작가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울프는 여성 일반의 설움을 씻으려는 전사가 아니라, 특별한 여성이 그 재능을 전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한 사람의 선배 작가였다. 그녀는 남편과 한 집에서 남남처럼 살 것, 남편이 작가로서의 자신을 항상 인정해주고 지원해달라는 조건을 내걸고 결혼에 응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복잡한 정신질환을 보다 잘 돌보기 위해 출판업을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울프는 당대 기준으로 남자의 도움 없이 독립적인 공간을 가질 수 있다거나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을 꾼 적이 없다. 물론 자신이 여성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남성 문호들의 절대 다수도 고등 교육을 받을 정도의 여유 또는 후원이 뒤따랐으며, 그 누구든 간에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을 해주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울프의 주장이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가라도, 석탄을 캐거나 환자를 간호하면서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울프가 결혼 전 남편에게 다소 과한 요구를 한 것은 아마도 자신이 원하는 조건이 완벽하게 충족되어야만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결혼 후에는 자녀를 가지려는 노력도 했다지만, 울프의 동성 연인과의 관계는 익히 알려져 있는 주제이다.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의 염원은 천재적인 여성 작가, 말 그대로 문호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여성 작가가 등장하는 것이었다. 울프 본인이 남편의 희생을 요구한 것도 어쩌면 자신이 그런 작가가 될 가능성에 모든 것을, 심지어 남의 인생까지도 걸어버린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100년은 지나야 그런 여성 작가가 나올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였다. 또한, 그런 작가는 자체적으로 빛을 내뿜는, 뜨겁게 발광하는(incandescent) 존재여야 한다고도 했다. 누군가의 모방을 하지 않고 자신만의 문체가 확실하며, 고유의 천재성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작가를 묘사한 용어인데, 울프의 글에 따르면 그런 작가를 위해 희생하고 후원하거나 재산을 물려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는 상당히 아이러닉하다. 하지만 울프는 작가의 재능과 그 표현만을 기준으로 그 발광의 여부를 판단했던 것이다. 정말로 순수하게 문학중심적인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자기만의 방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울프가 설정한 가상 인물 "셰익스피어의 여동생" 쥬디스(Judith)일 것이다. 쥬디스는 천재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죽는 여성의 상징으로, 울프의 글은 바로 이런 쥬디스들을 위한 것이다. 쥬디스는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으로 태어나, 그 시대에는 더욱 가혹했을 편견과 폭력에 희생되고 만다.

보통 이런 가상의 인물, 특히 여성이나 기타 약자를 내세우는 서사는 어떤 울분을 표현하거나 풍자를 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제약들을 비웃거나 타도하려는 목적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울프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이 가상의 쥬디스를 위한 분노나 슬픔이 아니었다. (그녀가 말하는 위대한 작가 역시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데 재능을 쓰지 않는 인물이다.) 과거에는 그런 쥬디스들이 한 마디도 쓰지 못하고 사라져 갔을지도 모르지만, 환경이 마련되면 다시 태어나서 글을 쓸 것이다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쓴 시점으로부터 약 100년이 흐르면 쥬디스가 등장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도 표현한다. (이제 10년 남았다.)

자기만의 방에서는 시를 소설보다 우월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상당히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그녀가 두 브론테 자매와 제인 오스틴, 죠지 엘리어트(메리 앤 에번스의 필명)라는 네 명의 천재 소설가들을 상정하면서도 아직은 나타나지 않은 여성 시인을 기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녀는 쥬디스가 제인 오스틴 같은 소설가가 아니라, 앞에서 거론한대로 "여성적"인 서사에 얽히지 않으며 그렇다고 남성을 모방하지도 않는 "양성적인" 위대한 작가들의 반열에 드는 "시인"으로 탄생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위대한 사상가는 양성이라는 개념은 원래 새뮤얼 존슨의 것이다.) 물론 울프가 시라는 형식 자체를 중시하거나 소설을 경시했다고 해석하기보다는, 인류 보편적인 경험이나 이상에 대한 작품의 빈 자리를 아쉬워했던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이 깊은 부분은 울프가 말하는 샬롯 브론테와 제인 오스틴의 대조이다. 샬롯 브론테는 제인 에어(Jane Eyre)에서, 캐릭터에 스스로 빙의된다. 제인 에어의 분노와 먼 미지의 땅, 모험에 대한 갈망은 어느 순간 샬롯 브론테의 목소리로 대체되고, 그렇기 때문에 어색하게 끝나는 장면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소설 속 캐릭터를 온전히 살리는데 쓰여야 할 열정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샬롯 브론테는 제인 오스틴보다 재능이 뛰어났을 수도 있지만, 상기한 이유로 인해 결과적으로 더 뛰어난 작품을 쓰지는 못했다는 비평이 이어진다.

여기에서, 울프의 시선은 정말로 철저하게 문학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제인 에어의 독백은 페미니스트의 시각으로는 문학적인 것과는 별개로 더 높은 가치를 가진 것일 수 있겠지만, 울프는 그것에 관심이 없다. 제인 에어의 독백이 결국 작가 개인의 울분과 답답함을 해소하는데 쓰였다는 이유로 그 문학적 가치를 낮게 본다는 취지의 서술은 굉장히 흥미롭다. 현대인의 입장에서 이런 비판을 제기하기는 굉장히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기만의 방은 자전적 에세이이기 이전에 자신의 주관이 굉장히 뚜렷하게 드러나는 문예비평인데, 현대의 기준으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표현들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다시는 제도권에서 나올 수 없는 류의 비평이다.

울프가 100년 뒤에 오길 고대하던 위대한 여성 작가의 등장이 요원해 보이는 이유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울프의 방식대로 보면 점점 더 개인의 울분인지 사회에 대한 비판인지 불분명한, 재능을 분노에 낭비하는 글이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거대 서사에서 오히려 점점 더 미시적으로, 주변으로 스며드는 문학은 이미 울프가 기대하던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간지 한참 되었다. 울프는 전투를 치르는 글, 항변하는 글, 가시적인 인간관계를 그리는데 집중된 글, 아픔의 글은 넘어서야 하는 대상으로 보았는데, 거의 100년이 다 된 지금 그런 글은 더욱 많아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런 글에 대한 가치판단을 떠나서,울프의 이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거의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여성과 문학에 대한 글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게 된다. 자기만의 방은 고전문학의 끝자락에 서서도 그것이 끝자락임을 몰랐던 것으로 보이는 한 지성인의 외침의 흔적이다. 울프는 1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의 환멸에 대해서도 서술하는데, 또 한 번의 잔혹한 세계전쟁을 이을 더 큰 환멸에 대해서는 짐작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환멸 이후에 으레 이어지게 마련인 쾌락주의와 자조, 끝없는 상대주의와 허무주의, 전복과 단순 유희, 대량생산을 겨냥한 글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시대가 끝자락임을 알았는지도 모른다. 단지, 그녀가 그렸던 "양성적인" 또는 성별이 중요치 않은, 재능을 전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성별 간의 싸움에 몰두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 위대한 작가는 "자기만의 방"이 당연시되는 현대에 와서는 더더욱 보기 힘든 생물이 되어버렸다. 울프가 위대한 작가의 기본적인 환경 요소로 꼽았던 최소한의 수입과 공간은 "쥬디스"는 물론이고 "윌리엄"의 재능도 담보해주지 않는 것이다.

울프는 쥬디스가 수많은 무명의 배고픈 여성 작가들의 토양에서 태어나리라는 말로 케임브릿지의 여성들을 격려하고자 했다. 씨를 뿌린 곳에 무엇이 나리라는 믿음에서였다.

문학에 대한 울프의 이상이 애초부터 오류였다고 보기에는 그녀가 말하는 위대한 작가들은 분명 존재했었다. 비록 제약을 받아 그 재능을 다 펼치지는 못했지만 천재적이었던 것으로 암시된 네 명의 여성 소설가도 분명히 존재했었다. 모든 글의 가치는 상대적이라는 말로 비켜가기에는 그들 모두의 작품세계가 너무 훌륭했었다. 어디에서 무엇이 상실된 것일까.

어쩌면 쥬디스들이 이미 도처에 와 있지만, 그 모습이 울프의 이상과는 현저하게 다른 것일뿐인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오늘날 누가 버지니아 울프에 공감할 것인가.

For @sndbox

This post explains the main themes found in Virginia Woolf's A room of one's own. In the book Woolf awaits for the great, androgynous-minded woman writer/poet, whose works will reach beyond gender debates and relationship-based romances. This long-awaited woman has not yet arrived, in my opinion, because of the vast changes in the literary and cultural scene since Woolf's day. It is at once fascinating and trag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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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을 향한 20세기 초 지식인의 태도가 자기만의 방에 녹아 있군요. 울프가 다시 살아 현대를 본다면 탐탁지 않아 하겠죠?

상업 출판물은 수익성을 따라 시류에 맞는 주제, 다수의 독자가 빠르고 쉽게 소비할 만한 주제를 내놓게 되고, 독립 출판물의 경우에도 결국 저자가 본인의 소소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책을 내는 것이니, 울프가 바라던 문학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또 독자의 입장에서도 18세기 계몽주의부터 강조되던, 200년이 넘는 일종의 지성주의에 피로도를 느낀 것 같아 보입니다. 반지성주의라고 하면 부정적인 어감이지만, 이미 인간은 자신의 영역에서만도 벅찰만큼 배울게 너무 많아져버렸어요. 거의 평생을 무언가를 배우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지적 갈망보다는 감성의 휴식 또는 카타르시스를 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정말 ‘오늘날 누가 버지니아 울프에 공감할 것인가’네요.

"정설"은 두 2차대전을 지나 보내고 생긴 절대 이성과 인간 진보의 가능성에 대한 환멸이 결국 뭐 요즘 우리가 익숙한 해체니 뭐니 하는 걸로 이어진건데 그게 프린스님이 말씀하시는 "피로도"와 맞닿죠. 그런 여러 근현대의 양상들은 분명 반지성주의적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벅찰만큼 배울 게 많아진 것"은 지성적이라기보단 전문적, 즉 직업과 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자격증의 취득이 아닐까 합니다. 휴...ㅠㅠ 지금 우리가 전문가라고 하면 상당히 격상시켜주는 느낌이지만 원래는 좀 그런 뉘앙스가 아니었거든요.

버지니아 울프 식의 논리는 굉장히 엘리트주의적이고 예술중심주의적인데, 저도 심정적으로 저런 생각에 공감을 많이 하지만 이미 지난 시대의 것이라고 항상 느끼죠. 슬퍼요. ㅎㅎㅎ

공감합니다. 그리고 저도 직업적인 전문성과 지성은 다른 것이라 생각하지만, 비슷한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 만큼 지성을 추구하기 어려워진게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이를테면, 사무 노동을 하는 사람은 체육관에서 근육을 혹사시키는 것을 즐길 수 있지만, 일상이 근육의 혹사인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에게 체육관은 그다지 즐길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맞습니다. 쉽게 말해서 뭐 전문성 인플레의 시대인 것이죠. ㅋㅋ대학부터 해서...지성은 그냥 제껴놓고 전문성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지의 여부가 결정이 되는...

저를 비롯해 제 친구들은 그런 면에서 대학을 지성의 상아탑이라기보다 직업전문학교라고 부르곤 했습니다ㅎㅎㅎ

네, 갈수록 그게 전세계적으로 맞는 얘기인데...그래서 아예 여러 국립대들의 성격을 딱 분리해서...상업/취업과 학문/연구쪽 인력을 따로 양성하자는 의견도 더러 있더라구요.

누가 버지니아 울프에 공감하는가

전 절대로 공감하지 못합니다.
모르는 사람이라서..ㅋㅋㅋㅋㅋ

학교 좀 다시 갔다올께요.
공대에서도 배울 수 있는 사람인가요??

무식한놈~!!!

ㅋㅋ이 글의 제목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나라는 연극 제목의 패러디죠. 지킬과 하이드로 변신하셨군요.

아~~~~~~~~~~~~~~~ㅋㅋㅋㅋㅋㅋ

빼애액?

점을 찍다가 너무 진부해서 학교 드립좀 쳐봤네요.
제이미님 태풍이 오고 있습니다.~~~~

네ㅋㅋ 태풍 피해 조심하시고 대비 잘 하세요!

저기... 학교 카풀 가능할까요?
저도 좀 배우고 와야할 거 같은데..

공감 ㅋㅋㅋ

흥미로운 글 감사합니다.

제가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잘 몰라서... 질문이 있습니다! 논지대로라면 결국 버지니아 울프가 바란 '위대한 여성 작가'는 실은 '위대한 남성 작가'여도 큰 상관이 없었던 걸까요? "여성과 문학을 넘어서는" 곳과 "양성성"에 이르는 순간 울프의 '문학적 초인상'은 탈성화되는데, 그럼에도 굳이 울프가 쥬디스를 위시한 '여성' 작가들을 주로 언급해왔다면 뭔가 고리가 빠져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요.
결론적으로 제이미님이 보시기에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성에 대한 어떤 혁신적인(?) 시각이라고 생각될 만한 유의미한 부분은 몹시 희박한 것인가요? 저는 여전히 여성으로서, 여성에 대해 어떤 문학적 초인을 그려냈다는 제스처가 여전히 인상깊어서ㅋㅋ 질문드렸습니다.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고, "여성은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없다"는 오래된 명제를 갖고 (섀도우)복싱을 하는 내용이죠. 그래서...위대한 작가라는 주제 자체로만 보면 남성이라고 해서 상관은 없지만, 포커스는 "여성도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성도 가능하되, 그 반열에 오르게 된다면 양성적인 사상의 경지에 이른다는 얘기이죠. (남성은 이미 많이 그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사실...) 여성이 그렇게 못한 이유로 생활상의 제약, 현실적인 억압을 거론하죠.

유의미한 부분이라...제 자신이 저런 탈성의 테제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는지라 애초에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평가하진 않지만,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로는 지금 기준으로도 획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저렇게 소수정예에 기반한 주장을 하기 힘드니까요.

그리고 당시의 기준으로는 저런 활동 자체가 여성주의였죠. 저렇게 여성의 문학, 여성에 대해 문예이론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여성주의였으니...물론 그 내용은 보시다시피 현대의 여성주의와는 안 맞는 부분이 많지만요.

그렇군요.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천천히 한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사실 고의적으로 "많은 남성 작가들"이 이미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도달한 것이 당연시되는 부분은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ㅋㅋㅋ 울프가 여성 작가를 기다린다는 게 결국 그걸 전제로 하고 있기도 하고...저 개인은 공감을 많이 하지만 시대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표현들이 은근 많아서요. ㅎㅎ

아하.. 역시 원전을 직접 읽어봐야겠군요. 그 생략된 부분의 존재를 알게 되니 제이미님의 해석이 더 와닿습니다.

음 참고로 원작도 전체적으로 위트와 가벼운 일화들로 꾸며진 컨셉이라 직접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진 않지만, 아직 여성이 가지 못한 영역으로서 "위대한 여성의 문학"을 논하고 있고 위대한 남성 작가들을 언급도 합니다. 사실 그것도 시대적인 특징인데, 남성 작가에 관한 부분은 굳이 단호박처럼 말할 필요가 없이 이해되리라고 볼 수 있었던 부분인 것이죠! ㅎㅎ

한국의 버지니아 울프는 유시민 씨 정도가 되겠네요. 물론 문학적인 측면에서만요~

아하하 그런가요?

전공 수업 때 절 정말 괴롭혔던 버지니아 울프... 근데 졸업하고 나니 머리 속에 남은 문학책은 다 버지니아 울프 밖에 없네요...ㅎㅎ 아이러니하게도...

아 맞다. 영문학 전공이셨죠. 저는 저 사람의 소설들은 특별히 좋지 않더라구요. 에세이를 보면 이쪽이 더 뛰어난 것 같기도 하구요.

와... 문학에 대해 무지한데도 재밌게 읽었네요.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몰려와 버지니아 울프에 걸맞는 제이미가 되길 바라는 덧글이 달릴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ㅋㅋ죄송..

ㅋㅋㅋ전 문학적 글쓰기는 잘 못해서 그냥 궁시렁만 댑니다. ㅎㅎㅎ

제인 에어가 과대평가된 소설이라는 견해는 어느 정도 가지고 있긴 했었는데 ㅋㅋ 끝이 어색했고 그건 작가 본인의 감정 문제로 보는 게 맞을듯요

제인 에어가 뭐 멀리 들판을 보면서 생각에 잠기는 부분이 어색하게 끝난다는 얘기였지만, 저 역시도 작품 자체의 끝에 대해서도 좀 떨떠름합니다. ㅎㅎㅎ

제인 에어 보면 중간중간에 마치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듯한 부분들이 있어서 아 문학적 감수성이 대단한 작가구나 하는 생각은 드는데, 그게 뭐랄까 승화되거나 다스려지거나, 이성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정리가 되질 못했죠. 그런 면을 꼬집은 것 같아요.

어쩌면 경험의 한계일지도 모르죠 ㅋㅋ 사실 로체스터랑 이어지는 것보다 그 잘생긴 사촌 오빠를 거절하는 장면이 훨씬 몰입이 잘 된다고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 남자들은 실제 남자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인데, 이 역시도 그런지도 ㅋㅋㅋㅋ 물론 추측입니다

전 신데렐라 이야기를 피하기 위해서 애꿎은 로체스터를 화재로 눈 멀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ㅎㅎㅎ

그러게요 ㅋㅋㅋ 차라리 신데렐라 이야기가 되었어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거 같기도 한데, 오만과 편견도 어떤 면에서는 신데렐라 스토리와 비슷하지만 그 소설 자체의 퀄이 나쁘게 평가되지 않는 것처럼

어쩌면 자존심 때문에 로체스터의 눈을 멀게 한 것일까요

음...어떤 이유에서든 여성이 구원해주는 서사로 가고 싶었으니 굳이 사촌들도 만나고 돌고돌아 정말 어려워진 처지의 로체스터와 조우! 어쩌면 자기희생적(이라고 느끼는) 삶에 대한 반항과 극복, 수용이 있었을지도요.

여긴가요.
지성인들의 댓글모임.
👀 )감히 범접하지 못하고 갑니다

ㅎㅎ찡여사님 반갑

그래서 댓글 내리다가 여기 댓글에 범접하고 갑니다.

ㅋㅋㅋ이거 이제야 봄.

Thank you very much on the information @jamieinthedark, I hope you always happy by one God.🇳🇱

Thanks. I love your photos of Paris.

울프의 시각으로 볼 때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한 수 많은 쥬디스들

비록 울프의 이상과는 다를지라도

멀리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를 조명해보는 건 어떨까요

신사임당에게는 친정이라는 자기만의 방이 있었고
허 난설헌은 시집살이라는 제도에서
자기만의 방을 구축하지 못하고 요절한
쥬디스가 아니었을까요

깨알만큼의 공감은 되겠지요

네, 서구의 여성들이 조선의 여성들을 볼 수 있었다면 많은 것을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ㅎㅎ

인터뷰 내용 봤네요.
글과 말 모두 인정입니다.
믿고 보고 듣는 제이미로 3단계 상승.
최고 고지가 얼마 안남았네요.^^
이포스팅은 좀 있다 읽고 다시 오죠.
오늘 술 약속으로 읽을 수 없으면 내일..
암튼 굿~~~

ㅎㅎ그건 어쩌다 보셨는지...이 글 취중 상태에서 읽지 마세요. ㅎㅎ

  1. 한집에서 남남처럼 지내는것 - 제이미도 비슷한 생각인데...
  2. 가난이 예술을 만드는가? 예술을 위해 가난을 택하는가에 나도 후자 동감
    가난에서 글을 쓸 용기는 불가능은 아니지만 상당히 어렵다는 생각
    경험없는 단순 생각으로 글을 써서 공감을 끌어 낸다는것은 난센스란 생각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경험은 필수(가난=경험)
  3. 제이미님 행복한 천재 작가가 될수도 있단 생각.
    방도있고 석탄을 캐러 나가지 않아도 되고 나름 꽤 많은 경험도 있고 , 가난을 택할 용기도 있단생각
  4. 지성과 유머가 있어 제이미가 더 멋져 보임
  5. 인터뷰포스팅은 거짓말 같지만 운명적으로 발견
    Kr 태그를 아이패드로 보며 내리기 드로그를 하다 잘못눌려 걸려든게 제이미 인터뷰
    이걸 어떻게 설명.. ㅋㅋㅋ 운명적(막 엮은거 같으나 팩트)

앞으로 제이미님 더 기대됩니다. 취중 읽었으면 ㅋㅋ 결혼얘기로 끝날 댓글..
점점 더 ㅈㄷㅅ ㅁㅈ

엥 전 전혀 반대의 생각인데요. 한 집은 힘들다는 생각이죠, 다른 사람과 같이 살면 피곤하니까...방이 아니라 큰 집을 혼자 쓰지만 공유는 못하겠어요.ㅋㅋ 그리고 굳이 결혼까지 한다면 남남처럼은 의미가 없죠. 다른 집에 살고 가끔 보기. 근데 그것도 굳이 꼭 이유가 없다면 귀찮...

게다가 전 글 관련된 일은 계속 하는데다가 문학을 쓰진 않죠. 가난을 택할 이유도 없으니 전혀 무관해요. ㅎㅎ 천재 작가가 나오길 기대하지만 시대가 이미 바뀌었다는 생각이네요...

그리고 가난이 정말 필수경험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주제입니다. 막 풍요로운 수준까지 바라진 않더라도...가난 때문에 못하는 경험이 더 많고, 생존에 힘쓰느라 못 쓴 작품들이 더 많고, 그 때문에 요절한 예술가가 더 많을 수도...힘들게 겨우 써낸 몇 가지를 보고 예술가에게 계속 가난을 요구하는 듯요.

  1. 한집에서 남남이 아니고 독립 공간,시간이 맞는
    말이네요. ㅋ 그렇게 읽은건 같은데 기억력과 술을
    탓합니다.

  2. 책을 쓰실 생각은 없다는 걸로 이해할께요
    책이 출간하자마자 천재작가다 이런 결정이
    많나요?? 후세에 천재라고 인정하는거 아닌가요?
    책을 쓰면 그렇게 될지도 모를 제이미란 생각
    꼭 문학으르써야 천재작가다 되는건가??
    잘 몰라 무지한 댓글일 수도

  3. 노숙자든 독거노인이든 산속 자연인이든
    그들에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면 경험이 필요하단
    애기임. 가난이 경험으로 이해함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사로 잘 아는 주제나
모르는 주제로 댓글배틀 한번 뜨고 싶다
ㅋㅋ 이길 자신은 없어도 꽤 재미 있을듯
인터뷰중 (웃음) 상상중 같이 웃음
사진을 잘 못찍으니 부탁하긴 좀 그렇지만
이젠 가을도 오는데 미소사진을
프사로 올리면 참 좋겠단 생각 ..(팬심)

ㅋㅋ미소사진ㅋㅋㅋㅋ가식적으로 나올 것 같아요.

사진 기술이 없어서..
아참 카메라 문제라고..
그래도 인터뷰중 꽤 여러번 웃으셨던데
셀카는 힘들겠고..
암튼 계절이 바뀌면 한번씩 바꿔줘요
제이미 변신은 무죄.. ㅋㅋㅋ 핵기대

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가라도, 석탄을 캐거나 환자를 간호하면서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소월 시인도 궁핍한 말년에 자신의 작품에 "석탄이나 캐러 갈까"라고 썼다죠. 아직도 '위대한 예술가가 되려면 가난하게 살아야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걸 보면... 하기는 당장 이곳도 스팀잇 아니면 무료봉사하는 곳 뿐이군요 ㅎㅎ

예술에 몰두하다 보니 가난한 것을 두고, 가난했기 때문에 작품을 탄생시켰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가난 속에서 수작들을 탄생시킨 사람들이 분명 있지만, 가난은 방해요소이자 극복의 대상이었을 뿐일텐데 말이죠. 물론 가난으로 인해 성숙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미 존재하는 재능에게 가난은 가난일 뿐일테고...그로 인해 아예 세상에 나오지 못한 작품이 상당히 많으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영화 디 아워스 보고 뜻모를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 작가를 알게되었죠.ㅎㅎ

아, 전 그 영화는 안 봤지만...본인의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가 특히 좀 컸던 사람 같아요.

울분의 표현은 '카타르시스'라는 형태로 고대 그리스 때부터 형성되어왔지요. 그 자체가 예술의 원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없었는데 요약을 읽어보니 공감이 어려운 부분이 있군요. 울프는 많은 예술가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작품을 창작해냈고, 대부분의 모티브가 사실 감정적 이유라는 것에 대해서 부정하는 편인것 같네요.

개인적으론 가장 미시적인 것이 가장 거시적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세상을 사는 '나' 자신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는 게 우리가 할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요.

울프에 대해 읽어보니 그냥 긴 덧글이 나와버렸습니다 ㅎㅎ

넵, 일단 어떤 영감의 원천으로서의 감정(특히 울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탄생하는 예술, 미시적인 접근(자신)의 문제가 느껴지죠.

일단 울분-카타르시스라는 원동력 자체에 대해선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겁니다. 단지 울프를 비롯한 저 시대의 사람들은 그 감정이라는 것이 1) 개인적 일기와 같은 차원에서 머무느냐, 아니면 2) 인류에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차원으로 승화가 되느냐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제인 에어의 예에서처럼 작가의 목소리가 캐릭터의 그것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드러날 정도가 되면 그건 "감정이 지나치게 개인적 차원에 머무른 예시"인 것이죠. 만약에 작가에게 어떤 정치사회적인 관심사가 있다면, 그리고 글쓰기가 더 극단적으로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게 되면 프로파간다적인 글쓰기가 될 수가 있는...그런 것이 그 자체로 가치가 없다기보다는, 굉장히 문학중심주의적인 시각에서 그런 것을 약점으로 본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에 셰익스피어나 그리스 비극들을 2)의 예시로 보는 것이죠. 어릴 적에는 '만인의 마음을 아는 셰익스피어'라는 표현이 그냥 미사여구인줄 알았는데...저자의 목소리와 캐릭터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캐릭터에 몰입해서 만들어냈다는 얘기로 이해가 됩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저도 막연히 작가든 화가든 간에 뭔가 극한 상황에서 탄생시키는 역작...이런 이미지가 있었는데, 결국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서 다른 일을 하지 않았거나 못했기 때문에 가난했던 경우로 이해가 되더라구요.

구체적으로, 가난 자체가 예술을 낳는 것인가, 아니면 예술을 낳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가난을 택한 것인가...이렇게 봤을 때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더 현실반영적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울프는 예술가를 위한 "이상적인" 환경은 어디론가 출근을 한다거나 가게에서 일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가난에 처할 수 있을테니 최소한의 수입과 공간이 있는 환경이 이상적이라고 한 것이죠. 천재가 가난하다 해도 어떻게든 작업에 몰두만 할 수 있다면 작품을 탄생시키겠지만, 이 최소한의 환경이 있을 때는 "전적으로" 천재성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뭐 이런 이야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가정법이기 때문에 예술가 개개인에 대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요- 누군가에게는 가난이 진짜 예술을 낳는 요인이 되었을 수도 있겠구요. 그런데 실제로 울프가 드는 남성 작가들 대다수가 최소한의 집필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던 경우더라구요. 물론 문학에 집중된 비평이기 때문에 회화나 조각쪽은 좀 다를지도 모릅니다. ㅎㅎ

미시적인 시선 부분은 위에서 얘기한 감정의 차원과 맞닿는 문제인 것 같아요. 개인의 감정에 갇히지 않고 인간 보편적인 문제로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거나 자기성찰이 많이 진행되었을 때는 아예 자폐적이어도 각광을 받죠. 실비아 플라스라든가...아마 모든 예술가가 무의식적으로라도 성장을 하려는 이유도 자기 자신을 통해 세상을 넓게 볼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닐까...생각을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현대에 와서는 손쉬운 출판이나 엄격한 기준들의 폐지 등등으로 인해, 그런 성장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이 마구 쏟아내는 작품이 너무 많아졌다는 생각이 있어요. ㅎㅎㅎ

의견 감사드려요. 일단 이 책을 읽을 때 누구든지 느낄 수 있는 의문들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저도 좀 길게 답변을 작성했습니다. ㅎㅎ

긴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정에 너무 매몰되지 않고 작가가 어느 정도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엔 동의합니다. 요즘엔 감정에 매몰되는 정도가 아니라 문학 파괴 수준의 글들이 넘쳐나죠. 그런 부분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닌 대중문화, 즉 즐길거리로 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살기 힘들다보니 다들 예술보다는 즐길거리를 찾는 것 같아요.

가난과 예술의 뫼비우스의 띠 같은 관계는, 아무래도 예술가적 기질이 있으면 가난해진다..가 기본적인 것 같고; 그 다음에 '어쩌다보니 불행하게 살다가 예술가가 되어버렸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회화의 경우에는 돈을 벌려고 했으나 실패하면서 계속 그림을 그렸다가 대부분이고 음악의 경우에도 '지원은 받았으나 계속 가난했다'가 대부분이라...

울프의 글에 나타나는 '지원을 받는다면 전적으로 천재성을 발휘할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제가 이름을 까먹은 어떤 남자 작가는 경제적으로 편안해지면서 글을 안 썼다고 합니다(.....)

돈과 예술의 관계는 답을 찾기가 힘든 것 같네요. ㅎㅎ

ㅎㅎ네. 감정이 격하더라도 자기 안에서 소화가 된다면 중2병 글은 벗어날 수 있겠죠!

또한 어떤 환경에서든 예술을 붙들고 놓지 않을 사람이 이런 글의 대상이겠지만, 일단 환경이 바뀌어봐야 아는 것일테구요. ㅎㅎ 책에서 예로 드는 여성 작가들의 경우 거실에서 소설을 몰래 쓰면서 이래저래 방해도 받고 해서, 더더욱 환경을 강조한 걸로 보입니다.

걱정 안해도 되는 환경이라면 다작도 할 수 있을텐데, 그 이름모를 작가처럼 그냥 한량 워너비인게 드러날 수도...ㅎㅎ

축하해요. 다크제이미의 원자폭탄 대댓글을 맞으셨네요. ㅋㅋ
저도 한번 당한적이 있어요. ㅋㅋㅋ
댓글로 눌러 죽이겠단 심산이죠.

형은 진짜 맥도날드로 더 해줄까 하다가 참은거임. 그 바람에 방구형과 결투하고...카비어천가도 받고...박제되고...

기다려요. 저작권 사기꾼 카비를 고발하는 글을 곧 쓸 겁니다. 댓글로 눌러 죽이는 사람이 있다면 폭로로 폭발시켜 죽이는 사람이 있단 것도 보여주겠어요. ㅎㅎ

ㅋㅋ기다립니다.

제이미님의 원자폭탄 대댓글을 맞으니 어우 막 등이 시원하네요. 한대 더 맞고 싶어요 ㅋㅋ

두번째 문단에 경제적 두번 들어감. 1수달

아니 왜 자꾸 스달 타령을...

알았어. 넣어둬 ㅋㅋ

뭘 또 넣어둠...행패 수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씨를 뿌린 곳에 무엇이 나리라는 믿음...
신뢰가 모든것의 기초인 듯합니다..이곳에서도 🇳🇱

넵, 이곳에서는 꾸준히 뿌리는 과정을 다들 겪게 마련이죠.

뭔가 아는체를 하며 글을 적으려 하다가 sleeprince님의 글을 보고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ㅎㅎㅎ다음엔 그냥 적어주세요! ㅋㅋ

대단하십니다! 이런글은 보팅엔 추천!! ^^

감사합니다. ㅎㅎ

수준이 상당히 높은 비평서(?)네요. 버지니아 울프를 오래도록 연구한 분 처럼 느껴집니다.

아, 감사합니다. 저서 몇 권을 읽어보긴 했지만 사실 특별히 관심이 있는 작가는 아닙니다. 단지 이 책은 좀 유의해서 본 부분이 많죠.

글을 보면서 제겐 머리에 잘 안들오네요 글의 문제가 아닌 제가 그 동안 책을 넘 편식 한듯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자전적 글만 편식 했나 봅니다.. ㅜ ㅜ

jamieinthedark님의 글 자주 읽어 둔 해진 머리를 좀 풀어야 할듯 합니다.
언젠가 풀어 진 머리가 될대 전 글 보는 눈이 달라져 있겠죠^^
감사합니다.

쭉 이해가 어려워도 열심히 볼께요 ^^

아참!! 마나마인 인터뷰 축하 드려요^^
부럽고, 전 언제 ㅎㅎ

스팀 고래의 꿈.jpg

자기계발서 얘기하시는 것 같은데, 장르가 아예 다르긴 하죠.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해요!